[부부심리클리닉]갈등상황에서의 왜곡된 기억으로 불화의 불씨 크게 만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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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심리클리닉]갈등상황에서의 왜곡된 기억으로 불화의 불씨 크게 만들지 마세요
  • 석현주 기자
  • 승인 2021.01.21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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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 송성환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영화 ‘메멘토’는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는 남자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다룬 영화이다. 남자는 사진, 메모도 부족해서 문신까지 남기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저장한 자신의 기억을 맹신한 나머지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다를까?

우리도 때로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기억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기억은 불변하는 기록이 아니라 언제든지 왜곡되고 변할 수 있는 해석에 가까운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부부 갈등 상황에도 마치 자신의 기억은 손상되지 않은 기록인 듯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리고 각자 가진 기억에만 기반하여 논쟁을 벌이다 보면 불화는 더욱더 깊어진다. 자신의 기억은 맞고, 배우자의 기억은 틀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논쟁하는 부부는 진료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진료실을 찾은 50대 부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울분을 토해내며 말했다.

“며칠 전에 다툴 때 남편이 주먹으로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

“내가 언제 때리려고 했어?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를 하네.”

“내가 그럼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주먹으로 때리려고 했잖아. 애들도 다 있었거든.”

가해 위험이 큰 상황에서 부부 상담을 진행하는 것은 권고되지 않기에 우선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20대인 자녀들에게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물었다. 그러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가 봤는데 아빠가 화가 많이 나기는 했어요. 그런데 때리려고 하지 않았어요. 욕설도 하지 않았어요. 서로 다투고 아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셨어요.”

우선 가해 위험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여러 회기에 걸쳐 부부 상담을 진행했다. 부부는 몇몇 대화방식을 교정하고, 1차 감정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갔다. 그것만으로도 부부 관계는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당시 남편이 자신을 때리려고 했다는 기억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물어보자 아내는 답했다.

“저는 원래 성격도 내성적이고 할 말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남편이 자주 늦게 들어오고 일 핑계로 술 마시고 다니니까 불만이 쌓였었죠. 결국, 저도 불만이 터져버렸는데 말을 내뱉고 나니까 남편이 어떻게 반응할지 무서웠어요.”

아내가 느낀 두려움이 남편의 실제 모습을 더욱 위협적으로 기억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남편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당시 아내가 자신의 행동을 위협적으로 기억한 것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기억은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기반이 된다. 하지만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임을 유념하길 바란다. 부부는 갈등 상황마다 서로의 기억을 맞춰보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마치 복잡한 퍼즐 조각을 함께 맞추듯이 말이다. 부부가 각자 가진 퍼즐 조각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결코 완성된 그림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송성환 마더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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