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12)]개망초와 쑥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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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12)]개망초와 쑥대밭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1.07.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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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장마철로 접어드니 공터라는 공터는 모두 개망초와 쑥이 점령해버렸다. 어쩌다 시골 빈집을 기웃거려 보면 마당은 영락없이 쑥대밭으로 변해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지천(至賤)’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천함’ ‘매우 흔함’으로 뜻풀이가 돼 있다. 지금 들판은 개망초와 쑥이 지천이다.

식물이름 앞에 ‘개’자가 들어가면 천하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개양귀비, 개별꽃, 개머루, 개망초···. 반면에 ‘참’자가 이름 앞에 들어가면 참꽃, 참머루, 참매미, 참나리, 참개구리 등과 같이 토종 의미를 갖게 된다. 개망초는 망초보다 못한 천한 풀이라는 뜻이다. 개망초는 번식력과 생명력이 워낙 좋아 개망초가 흥하면 농사를 망친다는 뜻에서 ‘망할 놈의 풀’로 불렸다. 개망초는 에도시대 말(1865년경) 관상용으로 도입됐다가 일본 전역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퍼져나갔다. 우리 백성들은 일본에서 들어온 개망초가 들판을 온통 휩쓸자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일부러 씨를 퍼뜨렸다며 ‘망국초’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개망초와 함께 들판을 순식간에 점령하는 것이 쑥이다. 쑥은 한자로 蓬(봉)이라고 쓰는데, 봉자가 들어가는 단어로는 봉두난발(蓬頭亂髮)이 있다. 봉두(蓬頭)는 글자 그대로 쑥대머리이다. “쑥대머리에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느니 임뿐이라. 보고 지고 보고 지고 한양낭군 보고 지고…”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이 감옥에서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한양의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옥중가(獄中歌)가 바로 ‘쑥대머리’다.

또 쑥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땅을 ‘쑥대밭’이라고 한다. 소학(小學)에 ‘봉생마중 불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이라는 말이 나온다. ‘쑥도 삼밭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삼처럼 곧게 자란다’는 말이다. 주위 환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돌이켜 보면 개망초꽃이나 쑥만큼 친근한 식물도 없다.

▲ 개망초 꽃
▲ 개망초 꽃


…白衣의 억조창생이 한 데 모여 사는 것 같다./ 한 채의 장엄한 은하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흰 구름이 내려와 앉은 것 같기도 하다./ 모여서 아름다운 것 가운데 이만한 것 잘 없으리라.…저 지천의 개망초꽃들에게 낱낱이 이름이 있었던가./ 바람은 거듭 꽃들의 이름을 부르며 불어가고/ 꽃들은 자지러지며 하얗게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그 놀라운 광경에 넋을 빼앗긴 내 입에서/ 무슨 넋두리처럼 이런 탄식이 흘러나왔다./ -詩人은 좆도 아니여! ‘개망초꽃 여러 억만 송이’ 일부(김선굉)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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