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숭아가 제철이다. 복숭아는 원래 순우리말 ‘복셩’이라 불렸으나 언제부턴가 복사꽃을 뜻하는 ‘복셩화(花)’가 열매까지 뜻하게 됐고, 발음이 ‘복셩화’에서 ‘복숭아’로 변했다. 옛 사람들은 복사꽃이 활짝 핀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낙원으로 꼽았다. <시경(詩經)> 중의 ‘도요(桃夭)’라는 시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복사꽃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싱싱한 복숭아 나무여!(桃之夭夭)/ 붉은 그 꽃 화사하네(灼灼其華)/ 시집가는 아가씨여!(之子于歸)/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리(宜其室家)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공부하는 선비의 집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복숭아가 여인의 분홍빛 엉덩이를 닮았기 때문이다. 성이 문란한 여성에 대해 ‘팔자에 도화살(桃花煞)이 꼈다’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에서는 이런 여자를 팜므파탈이라고 한다. 또 ‘도색(桃色)잡지’는 성적으로 음란한 잡지를 말한다. 복숭아 빛깔 잡지라고나 할까.
그러나 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신선들이 즐겨 먹었다는 곤륜산의 복숭아는 유명하다. 서왕모가 기르는 이 복숭아는 3000~9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전한(前漢)시대 동방삭은 이 복숭아를 3개나 훔쳐 먹고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손오공은 이 복숭아 과수원의 관리인이었는데 몰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는 몸이 됐다고 한다.

시인 구상은 어느날 폐 절단 수술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병문안을 왔는데 가장 아끼는 이중섭만 오지 않았다. 마지막에 헐레벌떡 달려온 이중섭의 손에는 복숭아 그림이 들려 있었다. 무일푼의 이중섭은 말했다.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이 그림은 구상 시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재에 걸려 있었다.
복숭아와 관련된 고사성어도 있다. <한비자>에 나오는 여도지죄(餘桃之罪)다. 위나라에 미자하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는데 너무 잘 생겨서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미자하가 임금과 산책하다 복숭아를 하나 따서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주었다. 이는 큰 불경죄였다. 그러나 임금은 “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증거”라며 칭찬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용모가 시들자 임금의 사랑도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죄를 짓자 임금은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다”면서 무거운 형벌을 내렸다.
예쁠 때는 뭔 짓을 해도 예쁘지만 눈밖에 나면 그 행동이 다 미워지는 법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