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는 음력 7월15일(양력 8월22일) 보름이었다. 매일 쏟아지는 비로 몸도 마음도 다 젖어있는 상태에서 오랜만에 보름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이 맘때가 되면 문득 떠오르는 꽃이 있다. 바로 달맞이꽃이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 아 아 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달맞이꽃’(지웅 작사 김희갑 작곡, 1972)은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과 단명했던 김정호가 불러 히트를 쳤다. 달맞이꽃은 해 질 무렵에 피기 시작해 밤에 활짝 피어난다. 다음날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면 붉은빛을 띠며 꽃잎을 오므린다. 밤에 피는 꽃 ‘야화(夜花)’로는 달맞이꽃 외에도 박꽃과 분꽃이 있다. 그 중에서도 박꽃은 초가집 지붕에 피어나는 것이 제격이다. 밝은 달이 떠오르면 박꽃은 달빛을 반사해 더욱 빛난다.
달맞이꽃은 ‘월견초(月見草)’ ‘야래향(夜來香)’ ‘석양의 벚꽃’으로도 불린다. 달맞이꽃은 본래 칠레가 자생지이고 우리나라에는 개항 이후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해방될 무렵이어서 ‘해방초’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한방에서는 달맞이꽃의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며 해열, 인후염, 기관지염에 이용한다. 혈행개선 및 혈중콜레스테롤 저하제로도 사용한다.

그리움 가득 채우며/ 내가 네게로 저물어 가는 것처럼/ 너도/ 그리운 가슴 부여안고/ 내게로 저물어 옴을 알겠구나/…/못 견디게 그리운 달 둥실 떠오르면/ 징 소리같이 퍼지는 달빛 아래/ 검은 산을 헐고/ 그리움 넘쳐 내 앞에 피는 꽃/ 달맞이꽃 -‘달맞이꽃’ 일부(김용택)
23일은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였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고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들어오는 문턱이라고나 할까.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이 즈음이 되면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햇볕도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한다.
태풍 오마이스가 한차례 지나갔다. 그 무덥던 날들도 한풀 꺾이고 그 자리에 달맞이꽃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주술같은 것이다. 계절도 기다림 앞에서는 숨을 죽인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