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18)]민초들의 꽃 봉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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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18)]민초들의 꽃 봉숭아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1.08.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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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 가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다가면 질터인데/ 손가락 끝에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봉숭아’ 일부(정태춘·박은옥)



가을장마가 지겹도록 내리는 8월말, 아직도 피어 있는 봉숭아가 고맙다. 언뜻 언뜻 푸른 하늘이 보이는 날 오후, 봉숭아 꽃잎을 찬찬히 살펴보며 그 옛날 봉숭아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여자 아이라면 대부분 어렸을 적에 봉숭아 꽃잎으로 손톱에 물을 들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첫눈이 올 때까지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옛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봉숭아는 봉선화(鳳仙花)로도 불리는데 국어사전은 둘 다를 표준어로 삼는다. 봉숭아는 옛날부터 집의 울타리 밑(울밑)이나 장독대 옆, 밭 둘레에 많이 심었다. 조상들은 봉숭아를 심어놓으면 질병이나 나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 또한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금사화(禁蛇花)라고도 불렀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을 붉게 물들이던 풍습도 붉은 빛을 귀신이 싫어하기 때문에 생긴 벽사의 민속이라고 한다.

▲ 봉숭아꽃
▲ 봉숭아꽃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우리나라 음악교육가 김형준이 지은 시에 홍난파가 작곡을 한 ‘봉선화’라는 노래다. 1920년에 작곡된 이 노래는 일제 치하에서 우여곡절 끝에 1942년에야 발표됐다. 여기서 ‘울밑에선 봉선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민초들이다. 일본이라는 역귀로부터 나라를 지키려는 봉선화같은 민초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봉선화는 씨주머니가 잘 터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봉선화 연정’이라는 유행가 가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만 대면 툭 터진다. 성질이 급하다는 의미로 ‘급성자(急性子)’라는 이름을 쓰고 있기도 하다.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다. 씨주머니를 건드리면 씨가 사방으로 튀어나가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봉선화 꽃이 지고 씨방이 다 터지고 나면 9월이다. 코로나로 하루를 보내고 코로나로 하루를 맞이하는 ‘길고 긴 날 여름철’이다. 역귀들을 내쫓고 스스로 씨를 뿌려 민족을 융성하게 하는 봉선화의 스토리가 가슴으로 다가오는 계절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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