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앞두고 곳곳에서 벌초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벌초는 산골짝을 누비는 전쟁이다. 오죽하면 벌초를 ‘풀(草)을 창으로 무찌르는(伐) 정벌’이라고 했을까.
벌초라는 말 참 이상한 말입디다. 글쎄 부랑 무식한 제가 몇 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큰 집 조카들을 데리고 벌초를 하는데, 이 벌초라는 말이 자꾸만 벌 받는 초입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원 참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무던히 속을 썩여드리긴 했지만……조카들이 신식 예초기를 가져왔지만 저는 끝까지 낫으로 벌초를 했어요, 낫으로 해야 부모님하고 좀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고, 뭐 살아 계실 적에는 서로 나누지 않던 얘기도 주고받게 되고, 허리도 더 잘 굽혀지고……앞으로 산소가 없어지면 벌 받을 곳도 없어질 것 같네요, 벌 받는 초입이 없어지는데 더 말해 무엇 하겠어요, 안 그래요, 형님 -‘벌초’ 전문(이홍섭)

墓(묘) 자는 ‘무덤’이나 ‘묘지’ ‘장사지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土(흙 토)자와 莫(없을 막)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땅에 묻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무덤을 나타내는 한자어로는 능(陵)·원(園)·묘(墓)·총(塚)·분(墳)이 있다.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을 때는 능, 원, 묘로 나뉘며, 주인을 알 수 없을 때는 총이나 분으로 구별된다. 능은 왕이나 왕비, 원은 세자와 세자비·왕의 부모, 묘는 그 외의 모든 이들의 무덤을 뜻한다. 총은 다른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특이한 유물이 발견된다든지 다른 무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무딘 날 조선낫 들고/ 엄니 누워 계신/ 종산에 간다/ 웃자란 머리/ 손톱 발톱 깎아드리니/ 엄니, 그놈 참/ 서러운 서른 넘어서야/ 철 제법 들었노라고/ 무덤 옆/ 갈참나무 시켜/ 웃음 서너 장/ 발등에 떨구신다/ 서산 노을도/ 비탈의 황토/ 더욱 붉게 물들이며/ 오냐 그렇다고/ 고개 끄덕이시고….
-‘벌초’ 전문(이재무)
유교에서는 사람의 육체 안에 혼(魂·얼)과 백(魄·넋)이 있어 죽게 되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백은 무덤에, 혼은 사당에 모셨다.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벌초는 혼백, 다시 말하면 얼과 넋을 다시 호출해 기리는 일이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