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미술 동시에 빠져들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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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미술 동시에 빠져들게 하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1.09.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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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예술관 ‘이탈리아 미술관 여행전’.
그림은 철학, 심리학, 과학, 그 어느 학문과도 잘 어울린다. 특히 철학과는 더더욱. 철학이 선명한 언어와 개념을 통해 ‘제대로 생각하기’를 가르친다면, 그림은 눈부신 색채와 형태를 통해 ‘더 아름답게 생각하기’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신간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은 바로 그런 철학과 그림의 장점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책이다.

저자는 철학자 이진민이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한 뒤 현재는 독일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집필과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일에 관심을 둬왔다. 철학자인 그가 학계의 소수를 만나는 삶 보다 일상의 다수를 연결하는 삶을 선택한 셈이다. 책 속에선 철학이나 미술을 잘 몰라도 손에서 책을 놓치않도록 만드는 저자만의 다정함, 친절함이 느껴진다.

우리 역사문화 속 인사들의 작품과 현대의 지폐 속 그림을 연결하는 대목이 재미있다. “오만원권 지폐에는 어몽룡의 다른 ‘월매도’가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대나무를 그린 그림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탄은 이정(1554~1626)의 ‘풍죽도’와 은은히 겹쳐둔 것까지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영 어색해졌다. 시원스럽게 솟아 있던 매화 가지가 짤뚱하니 잘려나간 데다 달도 억지로 깔고 앉은 듯하다. 높이 솟은 가지가 주던 미감이 없어지니 매화의 고고함도 숭덩 잘려나간 느낌이고, 높은 가지와 나란히 고즈넉한 하늘에서 빛나던 달을 가지 아래로 훅 끌어 내려놓으니 달 역시 어리둥절한 느낌이다.”

저자는 신의 영역으로 감히 건드릴 수 없었던 서양의 종교미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예수님께서 주먹질을 하시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있는 그림인데, 이 예배당은 바로 슈클라가 정의보다는 불의에 천착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는 지오토의 ‘불의’라는 그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너 좀 이리 와봐’의 화끈한 왼손과 ‘한 대만 맞자’의 나이스한 오른손을 선보이시고, 붙들린 자는 당황하며 ‘아 저 그게요…’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명석함과 유머까지 갖춘 참신한 문체로 중무장한 저자의 미술읽기가 압권이다. 책을 읽다 보면 두 가지 사랑이 한꺼번에 싹트게 된다. 철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미술에 대한 사랑. 혹자는 이렇게 평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림을 사랑함으로써 철학을 더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2021 미술주간이 10월7일부터 17일까지 열린다. 전국 300여개 미술관과 갤러리, 비영리 전시기관 등을 무료입장하거나 혹은 할인된 입장료로 들어갈 수 있다. 서울, 인천, 충청, 전라, 경상, 제주 등 6개 권역 17개 코스의 ‘미술여행’도 운영된다.

아쉽게도 울산은 제외돼 있다. 다만 울산현대예술관이 ‘우피치에서 바티칸까지, 이탈리아 미술관 여행’전을 진행중이다. 이탈리아 4대 미술관의 명작 레플리카를 보여주는 전시다. 미술주간에 앞서 ‘다정한 철학자’의 제안을 들어보면 어떨까.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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