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께면 낮은 산골짜기, 냇가 또는 마을 근처 도랑가 등 물이 있는 양지에 작고 앙증맞은 꽃이 핀다. 바로 고마리 꽃이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꽃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꽃은 연한 홍색, 흰색에 붉은색이 섞인 색, 흰색 등이 있다.
개울가 도랑 옆에 살아도/ 끌밋한 잎사귀 하늘을 찌른다// 졸졸 흐르는 물에 씻겨/ 꽃잎 새하얗다// 그 속에서 빨래하는 누나/ 손목보다 더 흰 꽃잎 끝에/ 손톱 봉숭아물보다/ 더 곱게 물든 입술// 토라져 뾰족 내민/ 앙증맞은 자태// 물처럼 흘러간 사람을/ 기다리다 못내 터져버려도/ 행여 한 번 품은 마음이/ 가실 줄이 있으랴// 큰 것만 찾는 눈에/ 어찌 띄랴 이 작은/ 숨은 정열
‘고마리’ 전문(김종태)
고마리는 더러운 물을 정화시켜주는 ‘고마운’ 풀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혹자는 번식력이 하도 강해 이제 ‘그만’ 번식하라는 뜻에서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마리는 9월~10월에 걸쳐 꽃이 피는데 꽃이 작아 접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 흰색의 끝에 붉은색 입술연지를 칠한 것 같은 아리따운 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고혹적이어서 손을 대보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생각날 정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고마리는 줄기가 두어 가지 밖에 안되지만 뽑아 보면 많은 뿌리를 갖고 있다. 특히 생활하수나 더러운 물이 흘러드는 곳에서는 그 뿌리를 더욱 발달시킨다. 그래서 고마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하천에서는 윗물보다 오히려 아랫물이 더 맑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마리를 ‘고마운 고마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 소를 몰고 가장 자주 갔던 장소가 있었다. 바로 집 근처 농수로 일대의 고마리 군락지였다. 소를 풀어놓으면 순식간에 고마리 군락지를 다 먹어치웠다. 돼지도 이 풀을 좋아했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내장기관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옛날 사람들은 이 고마리를 ‘돼지풀’이라고도 불렀다.
보통 사람들은 식물의 이름을 모르면 그냥 잡초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알고 내력을 파보면 결코 잡초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긋지긋한 장마도 그쳤다. 청명한 하늘처럼 세상에도 ‘고마리’라고 불리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