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난 23일이었다. 설악산에는 지난 19일 첫눈이 내려 겨울의 문턱을 실감케 했다. 그런데 서리도 종류가 있다. 상강 즈음에 내리는 서리를 ‘무서리’라고 하는데, 이는 ‘가을에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를 말한다. ‘무서리’에서 ‘무’는 ‘물’에서 ‘ㄹ’이 탈락된 형태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 전문(서정주)
국화는 서리를 맞으면서 핀다. 서정주의 표현대로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 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렸는지’ 모른다.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요즘 국화가 만발했다. 광활한 국화밭에 샛노란 국화가 눈 부시다. 그런데, 시인 서정주가 피워올린 국화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꽃은 보이지 않고 노란 꽃밭만 보일 뿐이다. 봄 날 내내 피울음을 토하면서 마침내 한 송이의 국화를 피워올린 누님같은 꽃이 보고 싶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 한 알’ 전문(장석주)
무서리는 국화 뿐만 아니라 대추도 길러낸다. 국화가 먹구름과 천둥을 먹고 자라나듯이 대추는 태풍, 벼락, 땡볕 그리고 무서리를 먹고 자란다. 무서리를 먹고 자라는 것은 또 있다. 바로 홍시(紅枾)다. 예로부터 홍시는 부모를 공양할 때 첫번째로 치는 것이었다. 이 없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만추의 풍수지탄이 더욱 깊다.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홍시여’(나쓰메 소세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