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26)]2월 꽃보다 붉은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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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26)]2월 꽃보다 붉은 단풍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1.11.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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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11월 들어 울산 인근 산과 들판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변했다. 영남알프스 신불산 정상에서 마을까지 단풍이 내려오는데 불과 3~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정주의 시처럼 ‘저기 저기 저, 가을꽃 자리/ 초록이 지쳐~’ 마침내 단풍이 들고 말았다. 전북 내장산과 남원 지리산 뱀사골, 대구 팔공산과 비슬산, 청송 주왕산도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글자 그대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추고 앉아 늦단풍을 아끼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맞은 단풍이 2월 꽃보다도 더 붉구나) ‘산행((山行)’ 일부(당나라 시인 두목)

▲ 단풍.
▲ 단풍.

‘상엽홍어이월화’는 활활 타는 단풍 이면에서 묘한 여운을 준다. 봄, 여름 내내 충천하는 기상으로 꽃과 잎을 피우다가 이제는 떠날 채비를 하는 노인의 모습을 닮았다고나 할까. 불교에서는 해가 지기 직전에 하늘이 밝아지는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용어를 쓴다.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는 뜻이다. 촛불이 사그러지기 전에 한 차례 크게 불꽃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만추는 이렇듯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계절이다.

지리산을 자주 올랐던 남명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단풍을 좋아했다. 조식의 시 중에 ‘三紅沼(삼홍소)’라는 시는 그가 얼마나 피아골 단풍을 좋아했는지를 알려준다. 三紅沼(삼홍소)는 ‘산이 붉고, 단풍 비친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라는 뜻이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의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향해 뫼(山)빛을 꾸미시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은 빨치산의 가장 큰 아지트로, 토벌대와 빨치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 와중에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됐다. 피아골의 붉은 단풍은 그 때 그 시절의 아픈 상처들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는 단풍나무과 식물이 다섯 종이 있다. 작은 잎이 11개인 것은 섬단풍, 9개는 당단풍, 7개는 단풍, 5개는 고로쇠, 3개는 신나무다. 이 중 당단풍이 가장 붉은 색을 띤다. 11월 첫주 붉은 만추가 겨울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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