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맘 때 전통시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무다. 무는 경상도 사투리로 ‘무우’ ‘무시’라고도 부른다. 요즘에 나오는 무는 사람 종아리만큼이나 굵어서 아이들이 들기도 힘들다.
종아리가 굵은 여자들의 종아리를 ‘무다리’라며 놀리는 사람들도 많다. 한 때 씨름 선수 이만기는 TV에서 하트 모양의 종아리를 선보여 환호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종아리 근육은 제2의 심장이라고 부를만큼 중요한 근육이다. 마찬가지로 무 또한 겨울 산삼이라고 부를 정도로 몸에 좋은 성분이 많다. 한의사들은 그래서 이 무를 동삼(冬蔘)이라고도 불렀다.
무는 원산지가 지중해 연안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래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무를 심기 시작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불교의 전래와 함께 들어와 삼국시대에 재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한다. 무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 약제의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간행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1236년)에 나복(蘿蔔)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가을 무는 흔히 ‘밭에서 나는 산삼’이라고도 하는데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질환 개선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업진흥청에 의하면 생쥐에 12주 동안 일반 무와 순무 추출물을 먹인 결과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혈중 콜레스테롤이 각각 57%와 58% 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과 LDL도 각각 68%, 70% 줄었다.

이렇게 속없는 놈도 사는구나/ 탁, 탁, 탁―/ 깍둑썰기를 해도/ 날 상하게 할 뼈가 없다/ 착, 착, 착―/ 채썰기를 해도/ 손 물들일 피 한 점 없다/ 칼로 무 베다 보면 속 부끄럽다// 이렇게 속 깊은 놈이 사는구나/ 난도질하고 남은 목/ 던져놓으면 수채 속일망정/ 파랗게 웃으며 되살아난다// 숙취를 지우는 무국을 뜨며/ 속없이 속 깊는 법을 생각한다
-‘무’ 전문(반칠환)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라는 말이 있다. 하찮은 일도 직접 하지 않고는 조그만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를 써는 일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무우 하나 먹고 트림만 잘 해도 만병이 낫는다’고 했다. 열무김치, 총각김치, 동치미, 무 채, 무 밥, 무말랭이, 깍두기, 무나물, 무 국, 무즙, 무 조청, 무 매운탕…. 무 없는 음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착, 착, 착― 채썰기를 한 뭇국이 생각나는 계절이다.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