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 며칠 사이 매서운 세밑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까지는 아직도 열흘 이상 남았다. 지난 22일은 밤이 가장 길어졌다가 다시 점점 짧아지는 동지였다. 다시 말하면 음(陰)의 기운이 극에 달했다가 양(陽)의 기운이 다시 일어나는 날이었다.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날을 정점으로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는 그림을 그렸다. ‘구구소한도’는 동지로부터 9일이 아홉번째 되풀이되는 날, 즉 81일째 되는 날에 추위가 풀리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선비들은 벽에 81개의 매화 꽃송이를 그려놓고 매일 한송이씩 채색을 하면서 한 겨울 추위를 버텨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백매(白梅)는 홍매(紅梅)로 바뀌고 창문을 열면 뜰에는 봄이 와 있었다.
소한도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다. 종이에 9개의 칸을 그리고, 각 칸 안에 9개씩 작은 원(圓)을 그려 도합 81개가 되도록 한 것, 한 가지(枝)에 꽃 9송이와 각 꽃송이에 꽃잎 9개씩을 그리도록 한 것, 9획으로 된 글자 9개를 써서 도합 81획이 되도록 한 것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정전수유진중대춘풍(亭前垂柳珍重待春風)’은 9획의 글자 9개로 되어 있다. 81일 동안 매일 한 획씩 먹으로 채워나가면 81일째는 전 구(句)가 완성되는데, 이 때가 경칩(驚蟄)과 춘분(春分)의 중간 쯤 된다. 뜻을 풀이하자면 ‘뜰 앞의 수양버들은 진중하게 봄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네~’라고나 할까. 정전수유진중대춘풍의 버드나무(柳)는 봄을 상징하는 식물이다. 주로 물가에 위치하여 주위 식물보다 먼저 싹을 틔우기 때문에 고향의 봄을 알리는 나무로 인식됐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내 몸은 시름에 혼자여위네// 가을 바람에 풀벌레 슬피 울 때에/ 외로운 밤에 그대도 잠 못 이루리 ‘실버들’ 전문(김소월)

우리나라에서 일년 중 가장 추운 혹한기는 1월 중순 무렵이다. 문밖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더욱 간절해진다. 이번 기회에 나만의 소한도(消寒圖)를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는 3월9일이 대통령 선거일이니까 구구소한도가 완성되는 시점이면 정치에도 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마당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실버들이 초록빛을 더할 3월이 기다려진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