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8)]뻥튀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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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8)]뻥튀기의 추억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2.01.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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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박상 기계가 돌아가면 설날이 온다. 필자의 어렸을 적 기억은 박상 기계와 설날이 한묶음으로 엮어져 있다. ‘박상’은 뻥튀기의 경상도 사투리다.

설날 일주일 전부터 필자의 고향 달천에는 양지쪽에 뻥튀기 장수가 자리를 깔고 앉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뻥튀기 장수가 오기도 전에 동네 사람들은 아침부터 줄을 섰다. 주인공인 뻥튀기 장수는 마음씨 좋은 동네 사람이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장작만 갖고 오면 거의 무료로 박상을 튀겨줬다. 뻥튀기의 클라이맥스는 ‘뻥이요!’라는 외침에 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르면 뻥튀기틀 속에서 엄청난 양의 강냉이 박상과 쌀 박상이 철망 안으로 쏟아져나왔다. 멀찌감치 귀를 막고 있던 아이들은 그제서야 주위에 모여들어 튀겨져나간 박상들을 주워먹었다. 당시 뻥튀기틀에는 곡물과 함께 사카린 같은 감미료를 같이 넣었는데 그 단맛이 아이들의 손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뻥튀기의 원리를 간단하다. 뻥튀기틀에 곡물을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서서히 가열하면 용기 속의 압력이 올라가는데, 압력측정기의 눈금이 적절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순간적으로 뚜껑을 열면 압력이 떨어지면서 곡물이 부풀어 오르게 된다. 이렇게 튀긴 쌀 박상이나 강냉이 박상에 조청을 부어 강정을 만든다. 설 전에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바로 강정을 만드는 일이었다. 필자는 당시 ‘강정’이라는 단어는 몰랐다. 어른들에게 들은대로 ‘오꼬시’라고만 알았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설날 아침에’ 일부(김종길)

설날은 어른보다 아이들 가슴 속에 먼저 온다. 콧물이 옷소매에 말라붙고 손등은 갈라터졌지만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그렇게 다가 온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뻥튀기 공약이 난무하지만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또 그렇게 맞을 일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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