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속 신라 계변성 위치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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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속 신라 계변성 위치 밝힌다
  • 홍영진 기자
  • 승인 2022.02.0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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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전해져 온 설화 속 ‘계변성’(戒邊城)의 실체가 이번엔 밝혀질까.

울산 중심부에서 가장 오래 전 축조된 것으로 전해져 온 계변성 터를 찾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동안 연구자들 의견이 분분했던 터라 계변성의 정확한 위치를 가려내게 될 지 울산지역 향토사가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울산시 중구는 ‘학성산 유적 성격 규명을 위한 문화재 조사’에 들어간다고 2일 밝혔다. 조사 대상지는 중구 학성동 충의사 뒷편 야산인 학성동 318-5번지 일원이다. 면적은 1133㎡(약 343평)이다.

중구는 올해 5월까지 조사 예정지 내 분묘를 이장하고 6월부터 8월까지 본격적으로 시굴 조사한다. 앞서 중구는 2019년 이 장소에 가칭 ‘장무공원’(옛 제2학성공원) 조성 계획을 세우면서 울산문화재연구원에 문화재 지표 조사를 의뢰했다. 당시 연구원은 토성 벽과 고려 시대 기와 무지를 확인했고,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중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계변성 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울산연구원은 장무공원 조성과 함께 이 일대에 ‘도산성전투 박물관 건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 동안 울산 중구에는 병영성, 울산읍성, 울산왜성, 계변성, 고읍성까지 다수의 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 가운데 육안으로 확인된 병영성, 울산읍성, 울산왜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신라의 계변성과 고려의 고읍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다.

일부는 중구가 이번에 추진하는 충의사 뒤편을 계변성으로 추정한다. 울산부지도, 울산읍지 등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울산 동헌으로부터 동쪽으로 5리에 계변성이 있다고 표기돼 있는데, 그 위치가 충의사 뒷편과 같다는 것이다. 또 지난 2019년 발굴 당시 나온 기와 중에는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암키와가 있어 계변성 축조 시기와 같다고 주장했다.

반면 또다른 일부에선 지난 1991년 반구동 강변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조사된 반구동 유적(토성)을 계변성으로 추정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병영성 남쪽에 계변성과 고읍성이 있고, 고읍성은 계변성 서쪽에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를 현재 병영성과 충의사 뒷편 터, 반구동 토성 등에 대입하면 반구동 토성이 곧 계변성이라는 것이다.

반구동 토성에서도 발굴 당시 신라 황룡사에 쓰였던 것과 같은 기와가 나와, 시대적으로 계변성 축조 시기와 일치한다. 지역사연구자들 사이에선 이번 충의사 뒷편 발굴 조사가 끝나면 기와나 그릇 등 추가 출토유물을 통해 계변성 위치를 확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경상도지리지(1425)에는 “울산은 본래 계변성인데 신라 말인 천복 원년(901)에 이 성의 신두산에 쌍학이 온몸이 금으로 된 신상을 물고 와서 울었기 때문에 고을 사람이 ‘신학성’으로 불렀다”고 돼 있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는 “계변성의 서쪽에 고읍성이 있었다. 둘레가 315보”라고 전하고 있다. 홍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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