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민 없는 국가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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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민 없는 국가 어디 있나
  • 경상일보
  • 승인 2022.07.0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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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국 전 청와대 대변인

영국에서 MBC 런던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공영방송 BBC가 해외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유해를 송환하는 행사를 중계방송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유해를 실은 비행기가 영국 상공에 나타날 때부터 시작해 운구차가 공군기지 인근 마을의 중앙도로를 통과해 가는 전 과정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것이었다. 유해가 동네를 지나는 동안 주민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도로주변에 도열해 운구차에 꽃을 올려주거나 고개를 숙여 조용히 묵념을 하며 넋을 기렸다. 자신들의 친인척도 아니고 심지어 그 동네 청년도 아니지만 최대한의 예우를 다 갖추어 맞이했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것도 아니고 타국의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었지만 그래도 자국의 국민이 자신들을 대신해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한데 대한 감사와 존경과 보답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영국 잉글랜드 서부의 작은 마을 ‘우튼 바셋’의 주민들은 2007년부터 그렇게 자발적으로 송환의식을 엄숙하게 진행했다. BBC는 유해가 돌아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중계 방송했고 전 국민이 숙연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BBC의 중계는 국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유창한 웅변도 어떠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영국 왕실은 2011년 이 마을에 ‘로열(Royal)’ 칭호를 내려 ‘로열 우튼 바셋’으로 격상시켜주었다. 나라를 위해 숨져간 국민의 존엄을 드높여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지금 당시의 BBC중계를 떠올리는 것은 공영방송의 책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5년 동안 6·25전쟁 기념식 행사에 딱 한번 참석했다. 2020년 70주년 때다. 그것도 쇼를 하기 위해서. 147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를 모셔오면서 야밤에 온갖 화려한 조명을 동원해 최대한의 극적 효과를 연출했다. 24일 도착했으나 다음날 저녁 행사를 위해 유족의 품에 안기지도 않았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고 7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고귀한 유해가 대국민 선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행사를 기획한 전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최근 북한에 “열병식을 밤에 하라. 밤에 해야 조명을 살릴 수 있고 극적효과가 연출 된다”고 조언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2020년 6·25전쟁 70주년 기념식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는 것이 본인의 발언으로 입증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과 제2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도발의 희생자를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도 단 두 번 참석했다. 한 번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은 2021년 4·7보궐선거를 앞두고였다. 표를 의식한 마지못한 참석이라는 비판과 북한의 눈치를 보며 북한이 싫어할만한 행사에는 국민희생도 아랑곳 않고 참석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합리적으로 보였다. ‘월북’ 누명을 쓰고 있는 ‘서해 공무원’ 사건은 또 어떤가. 문 전 대통령이 22일 오후 6시36분 최초 보고를 받고 북한에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라’고 지시를 했다거나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살려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얘기는 없다. 국민이 북한군에 총살을 당하고 심지어 불태워졌다는 경악할만한 보고를 받고도 밤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한마디 비난 메시지조차 없었다. 입버릇처럼 ‘사람이 먼저’라고 하더니…. 10시간이 지난 다음날 아침에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라’는 영양가 없는 지시를 내렸다고 하니 국민에 대한 그분의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국민 없는 국가가 어디 있느냐, 국민이 있어야 국가도 있고 민생도 있다”는 유가족의 피맺힌 절규가 영축산자락에 메아리친다.

정연국 전 청와대 대변인

(※외부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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