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7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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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74)]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경상일보
  • 승인 2022.09.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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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느긋한 마음으로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올려다본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다. 덕분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시시하게 보인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안동 임청각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길을 놓았다. 임청각과 가까운 칠층전탑도 철길에 바짝 붙어 80여 년을 진동과 소음에 시달렸다. 천년을 넘어 버텨온 탑이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오랜 진통 끝에 철길은 외곽으로 이전되고 비로소 국보인 칠층전탑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높이 17m, 기단너비 7.75m의 거대한 탑이다.

회흑색 벽돌로 쌓은 전탑은 철길과 종택의 높은 담장 사이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사방은 캄캄하고 빼꼼 뚫린 하늘마저도 늘 우중충했다. 애가 타고 갑갑했다. 감금된 탑, 시들시들한 탑, 기찻길 옆 탑, 숨은 탑 등 갈 때마다 붙여준 이름들이다. 그런데 사방으로 하늘이 열리고 하얗게 낮달까지 걸려 있다. 이제 온전히 탑의 시간이다.

통일신라 때 건립된 법흥사지 칠층전탑 옆은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높은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간다. 대청인 영모정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신다. 탑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다. 종택이 옛 법흥사 터에 자리하고 있으니 영모정이 금당자리 쯤 될 것 같다. 연못에는 연꽃 진 자리에 튼실한 연밥이 영글고 있다. 아직 고개 꺾이지 않은 연잎들이 마지막까지 초록을 뿜어낸 탓에 짙붉은 꽃무릇과 대비를 이룬다.

칠층전탑은 전면해체 방식으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제의 만행으로 기단의 윗면에 발라놓은 시멘트를 걷어내고 사라진 감실의 불상도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기단을 빙 둘러 희미하게 남은 팔부중상과 사천왕상의 부조도 제 자리를 찾으면 좋겠다.

평생을 전탑과 함께 살아온 종갓집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욕심을 내려놓은 자리에 불성이 담겨 저렇게 꽃 피우고 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를 키워내는 것이리라. 한 사흘, 나도 키 큰 탑과 동무하고 싶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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