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집 주인이 포장을 했을 때 장미는 폭소를 터뜨렸다.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꽂았더니 폭소는 더 커졌다.
나는 계속해서 물을 주었다. 장미의 이름을 부르며.
장미는 몸을 뒤틀며 웃어댔다. 장미 가시가 번쩍거리며 내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가시들을 훔쳤다.
나는 가시들로 빛났다. 화병에 꽂힌 수십, 수백 장의 꽃잎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나는 기다렸다. 나는 흉내 냈다. 나는 웃었다. 그리고 웃다가, 장미가 끼고 있는 침묵의 틀니를 보았다. 장미는 폭소를 터뜨렸다.
가시가 있어야 비로소 빛나는 ‘장미’

폭소란 세차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니 활짝 핀 장미의 아름다움이자 장미 꽃다발이 주는 설렘까지 아우르는 표현이다. 활짝 핀 붉은 장미를 보면 정말 온몸으로 웃는 것 같다. 함박웃음, 홍소. 생의 절정에 대한 찬미.
‘나’는 그 웃음에 매료되어 계속 물을 준다. 그러다가 가시를 발견한다. ‘몸을 뒤틀 때’ 보이는 잎 그늘에 숨은 가시. 가시로도 장미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가시를 훔쳐 꽂고 장미를 흉내 낸다. 하지만 가시를 잃은 장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이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내가 보는 것은 ‘침묵의 틀니’이다. 나의 흉내 놀음에 장미는 침묵하다 폭소를 터뜨린다. 비웃음과 냉소. 훔쳐낸 가시를 제 것인 양 과시하는 것은 상처를 일부러 내보이는 것처럼 흉하다. 온전한 나의 생은 어디로 갔을까.
가시가 없는 장미나, 가시만 있는 장미는 불완전하다. 장미는 가시가 있어야 빛나는 존재. 릴케의 묘비명처럼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