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은 일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다. 또 그 다음날은 부채를 선물한다는 단오(端午)다. 울산은 벌써부터 한 낮 기온이 34℃를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가 오면 기나긴 장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짙푸른 녹음 어디에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귓전을 때릴 것이다. 계절의 법칙은 어긋남이 없다.
장맛비 잠시 멈춘/ 하늘 사이로/ 자귀나무 붉은/ 꽃등을 켰다/ 주먹만 한 하지감자/ 뽀얀 분 나게 찌고/ 아껴 두었던 묵은지/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의 첫 울음소리/ 놋요강도 깨질듯 쟁쟁하다 ‘하지(夏至)’ 전문(최원정)
하지의 낮 시간은 14시간 35분.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이 가장 길다. <고려사>에 따르면 24절기를 절기마다 5일씩 끊어 3후(候: 기후)로 나눴는데, 하지의 경우 초후(初候)에는 사슴이 뿔을 갈고, 차후(次候)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반하(半夏: 끼무릇·소천남성·법반하라고도 부름)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매미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7년 동안 땅속에서 견디는데, 하지를 기점으로 날개가 돋아난다. 매미는 땅 속에서 보내는 기간에 따라 5, 7, 13, 17년 등 4종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는 5년생 참매미와 유자매미가 많다.
하지는 낮 시간이 긴 만큼 할 일도 많다. 감자 수확, 고추밭매기, 마늘 수확, 보리 타작, 병충해 방재 등. 그 중에서도 굵고 토실한 감자를 캐는 일은 가장 즐거운 일이다. 갓 캐낸 햇 감자를 잘 삶아 소금에 찍어먹는 맛은 안 먹어본 사람은 절대 모른다.

통째로 삶은/ 하얀감자를/ 한 개만 먹어도//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넉넉해지네// 고구마처럼/ 달지도 않고/ 호박이나 가지처럼/ 무르지도 않으면서// 싱겁지는 않은/ 담담하고 차분한/ 중용의 맛// 화가 날 때는/ 감자를 먹으면서/ 모난 마음을 달래야겠다. ‘감자의 맛’전문(이해인)
‘천신(薦新)’이라는 말은 새로 농사지은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社稷)이나 조상에게 올리는(薦) 의식을 말하는데, 이 중 ‘감자 천신’이라는 단어가 있다. 하짓날 조상이나 사직에 맨 먼저 감자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여름날 오후의 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하짓날, 오랜만에 햇감자나 삶아볼까나.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