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랑대에 달랑거리던 햇살 흘러내린다
옥상 난간 벽에 그림자 한 폭 자라다 흔들린다 데생 작업 중인가?
누가 그리는 묵화일까? 바지랑대, 그림 속으로 고개를 내밀자
화폭엔 비스듬, 웬 不 자?
그림자, 마지막 하나 여태 찍지 못하고
저 자리, 새 한 마리 앉으려나?
그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지랑대, 짧은 그림자를 낙관인 양 뭉개는데
그 새, 한 발 만으로도 이 계절 견딜 수 있다는 걸까?
세상엔 마음대로 되는 게, 있다
새 한 마리 앉았다간 그림 속 자꾸만 자라나고
새 한 마리 또, 날아와 점을 찍고 간다
흔들리다 사라지는 획, 不
누군가 자꾸만 쓰다가 지우는
그림자 한 계단 내려서고 나, 그림 속으로 흘러내려
아니다 아니다,, 자꾸 날 지워가는
벽 화폭삼아 마음으로 그려내는 그림자놀이

관찰과 상상력이 뛰어난 시다. 햇살이 어지간히 이울어가는 오후 3시17분, 바지랑대와 건물의 굴곡으로 인해 옥상 난간벽의 그림자는 얼핏 不 자처럼 보인다.
아니, 미처 점 하나가 찍히지 못해 완성되지 못한 不이다. 새 한 마리 날아온다면 글자가 완성될 텐데. 시인은 벽을 화폭 삼아 그리는 그림자의 변화와 새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결합한다.
不은 ‘아니’라는 부정의 의미이다. 세상은 마음대로 ‘안 되는’게 맞다. 하지만 시인은 세상엔 마음대로 ‘되는’게 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그리는 상상의 세계에서 새는 ‘마음대로’ 날아오고 날아가면서 不 자를 썼다 지웠다 한다. 그림자 하나에서 온갖 모양을 상상하던 어린 시절의 그림자놀이와 같다.
오히려 시인의 不은 마지막 행의 ‘아니다 아니다’에서 강조되어 나타난다. 건물의 그림자는 좀 더 길어져 ‘한 계단 내려가고’ 이제 不이 지워지는 시간. 不이 不이 아니게 되는 시간이 온다. 시인은 이것을 ‘자꾸 날 지워가는’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제 새는 사라지고, 대신 한바탕 그림자와 새를 가지고 논 시 한 편이 남았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