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구명자 ‘시오라기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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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구명자 ‘시오라기 한 줄’
  • 서정혜 기자
  • 승인 2023.10.30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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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낮은 꽃들이 푸른 눈 뜨는 곳
발 아래 시오라기 한 줄 꿈틀거리다

들여다보니 장렬하게 떠메고 가는
일개미의 행렬

그것이 무엇이관대 저들은 저들 더듬이에
저들은 내 안에 박혀오는 것인지

한참을 들여다보다

끝내 떠메고 오는 실오라기 한 줄
시오라기 한 줄…이라 고쳐 쓴다

 

시오라기 한줄…사물을 성찰하는 시인의 시선

시인은 무심코 발밑을 보다 검정 실오라기 한 줄을 본다. 그런데 실오라기가 움직이는 게 아닌가. 들여다보니 실오라기는 먹이를 떠메고 가는 개미의 행렬이다.

많은 사람은 아마 이 지점에서 심드렁해지거나 ‘개미들이 부지런도 하지’ 중얼거리며 눈길을 거둘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다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참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다. 깊이 살피고, 응시하고, 발견하고, 성찰하며, 진실에 다가가는 행동이다. 들여다봄으로써 시인은 실오라기가 사실은 일개미의 행렬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침내 실오라기는 ‘시’오라기임을 깨닫는다.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그것은 단지 언어의 유사성 때문은 아니다. 개미는 자기 몸피보다 더 큰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 꽉 물고 가는데, 이 행동은 사물을 대하는 시인들의 태도와 닮았다.

시인도 마음을 건드린 어떤 대상을 붙들고 궁구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시인은 ‘내 안에 박혀오는’이라고 표현하였다.

시인은 한 줄 실오라기처럼 범속하고 비루한 일상에서 숭고한 시오라기를 발견하고 끌어내는 존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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