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본 한미한
선비는 다만 적막할 따름이다
이따금
무료를 간 보느니
2
긴 여름내
드높이 간두에 돋우었던 생각의 화염을
속으로 속으로만 낮춰 끄고 있노니
유배 나가듯
병마에 구참(久參)들 하나둘 자리 뜨는
텅 빈 가을날
맨드라미 통해 텅빈 가을 뜰의 적막함 표현
맨드라미는 뱀을 쫓는 식물이라고 알려져서 장독대 근처에 많이 심었다. 장독대 근처에 활짝 핀 붉은 맨드라미와 봉숭아는 여름의 그리운 풍경이다.
얼마 전엔 경주의 수목원에 갔다가 가을 맨드라미를 보았다. 몇몇은 이미 고개가 꺾이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있는 맨드라미도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네 닭에게 쪼인 주인공네 닭처럼 듬성듬성 털(?)이 빠져 있었다. 맨드라미도 백일홍처럼 제법 오래 피어있는 꽃인데도 계절의 변화는 무심하고 무상하다. 가을 맨드라미는 이제는 쓸모없게 된 가을 부채 같다.
스스로 ‘한미한 선비’라고 지칭한 시인은 무료히 가을 뜰을 바라보다 시들어가는 맨드라미를 발견하고, 병마에 구참이 자리를 뜬다고 표현하였다. 구참은 오래 참선한 노승을 말하니, 한여름 맨드라미 붉은빛을 나타내는 ‘간두에 돋우었던 생각의 화염’과 잘 어울린다. 화염도 사위어 재로 변해 가는 가을. 짧은 시에 텅 빈 가을 뜰의 적막함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놓았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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