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越冬)이란 겨울을 넘는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겨울은 넘기 힘든 고비임에 틀림없다. 인간이 하는 여러가지 월동 준비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김장이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김장 보너스’를 지급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관습이었다. 지금 생각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김장문화는 우리 삶에 깊이 파고 든, 일종의 DNA같은 것이었다.
오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2020년 2월11일 ‘김치산업 진흥법’ 제20조의2가 신설됨에 따라 매년 11월22일로 정해졌다. 김치의 날은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치는 면역력 증진 및 바이러스 억제, 항산화 효과, 변비와 장염 및 대장암 예방, 콜레스테롤 및 동맥 경화 예방, 다이어트 효과, 항암효과 등 갖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날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기도 하다.
할머니들 둘러앉아/ 이집 저집/ 하하 호호 웃음 조미료 뿌려가며/ 배추를 버무린다.// 봉이 아재 새 장가 간 일/ 진구네 삼촌 취직 못한 일/ 며느리 흉, 아들 딸 자랑/ 실몽당이 같은 할머니들 이야기/ 돌돌 말아 항아리에 담는다./ 갓 삶아낸 수육// 쭉 찢은 김치에 싸/ 만재 할아버지 오며 한 입/ 민영이 이모 가며 한 입/ 혓바닥 불났다 호호거리며/ 나도 한 입…. -‘김장하는 날’ 일부 (김자미)
지난 2013년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된 공식명칭은 ‘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이다. 단지 김치를 담그는 기술 뿐만 아니라 이웃끼리 나누는 문화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유네스코는 김장을 ‘한국인의 정체성(Korean identity)’ ‘가족간의 협동(family cooperation)’ ‘자연과의 조화(harmony with nature)’ 등으로도 설명한다.
필자는 지난 주말 처가 식구들과 함께 김장을 했다. 해마다 하는 행사이지만 늘 풍성하고 왁자지껄한 것이 김장 행사다. 그런데 최근에는 김치를 사 먹는 집이 많아지고 공동체 의식도 많이 약해졌다. TV에서는 기업체에서 만든 김장김치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맛도 있고, 위생도 철저해 김치를 사먹는 젊은층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혹 이러다가 김장문화가 사라질까 슬그머니 걱정된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