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 주,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지난 주 소설(小雪)을 버텨냈던 은행잎들이 더 이상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는지 그만 가지에서 두 손을 놓아버렸다. 어디선가 한 차례 불어온 바람이 은행잎들을 굴려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가을바람 솔솔솔 불어오더니/ 은행잎은 한잎두잎 물들어져요/ 지난봄에 언니가 서울가시며/ 은행잎이 물들며는 오신다더니
황금찬 시인의 ‘은행잎’이다. 1948년 발표된 이래 60년이 넘게 국민 누구나 즐겨 부르는 애창 동요가 됐다. 은행잎은 봄철 연두색에서, 여름철 짙푸른 색깔로, 가을에는 노란 빛으로 모습을 바꾼다. 하지만 지난봄에 서울로 떠난 언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은행나무의 ‘은행(銀杏)’은 은(銀) 빛이 나는, 살구(杏)처럼 생긴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3억5000만년 전 고생대에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에 ‘살아 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은행은 은행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손수(公孫樹)라고도 한다. 할아버지가 은행을 심으면 손자가 그 열매를 먹게 된다는 뜻이다. 실제 은행나무는 30년 정도 지나야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은행나무를 ‘가을의 전설’이라고 부르는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우리 동네 은행나문 굳고 큰데도/ 어쩌면 열매 한 톨 안 달리고// 건너 마을 은행나문 그리 안 큰데/ 해마다 우룽주룽 열매 달리나?// 우리 동네 은행나문 수나무고요/ 건너 마을 은행나문 암나무래요.// 아하하하 우습다 나무 내외가/ 몇백 년을 마주보고 살아온다네.
고(故) 권태응 시인이 지은 ‘은행나무’라는 시는 은행나무의 생태를 재미있게 표현한 시다. 반칠환 시인은 시 ‘은행나무 부부’라는 시에서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라고 노래했다. 암나무와 수나무가 십리나 떨어져 있는데도 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식물이다. 지금은 가로수로 흔히 심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절이나 서원 같은 특별한 곳에 심어 경배하던 나무였다. 대지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잎은 그 아름다움이 비길 데가 없다. 바야흐로 계절은 겨울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