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는 가로지르는 도구다. 가위는 하나였던 세계를 둘로 나누고 영원한 밤의 골짜기를 만들고 한 사람을 절벽에 세워두고 목소리를 듣게 한다. 발아래, 당신의 발아래 내가 있으니 그냥 돌아가지 말아요.
절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가위는 있다. 그는 밤 가위로 밤을 깎는다. 밤의 껍질은 보기보다 단단하다. 밤으로부터 밤을 구해내려면 밤도 감수해야 한다. 피부가 사라지는 고통을. 그래도 조각나지는 않는다. 밤 가위는 밤의 둘레를 따라 천천히 걸어 하나의 접시에 당도한다. 당신 앞에 생밤의 시간이 열릴 때까지.
당신 발밑으로 이유 없이 새 한 마리가 떨어진다면 제가 보낸 슬픔인 줄 아세요. 나는 아직 절벽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두가지 ‘밤’(어두운 밤·먹는 밤)…가위를 통해 존재의 갈망 노래

밤이 가장 긴 동짓달이 다가오고 있다. 이 시는 어두운 밤과 동음이의어인 먹는 밤, 그리고 그것을 깎는 밤 가위란 사물을 통해 존재의 갈망에 대해 노래하는 시다.
가위는 무언가를 자르는 도구이다. 가위가 입을 벌릴 때 세계는 균열되고 밤이 지배하는 골짜기와 절벽이 만들어진다. 그 절벽의 위와 아래에 당신과 내가 있다. 여기서 가위는 당신과 나를 갈라놓는 어떤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위질을 할 때 가윗날은 서로 스친다. 아주 잠깐이지만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가윗날이 합쳐지는 순간 가위가 무언가를 자른다는 것, 그 순간 세계는 균열을 맞이한다는 것, 이것이 가위의 역설이다. 하지만 그 합일의 순간을 고대하며 당신과 나는 절벽을 떠나지 못한다.
절벽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밤 가위로 밤을 깎는다’는 것은 중의적 의미다. 밤 가위는 밤껍질을 깎는 도구이자 어두운 밤을 도려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밤 가위가 밤의 껍질을 벗길 때는 ‘피부가 사라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밤이 알몸을 드러낼 뿐 아니라, 저 영원과도 같은 긴 밤이 조금은 짧아질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생밤의 시간’ 밤의 얼굴이 사라지는 시간, 드디어 밝음으로 전환되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