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울산도 한 동안 영하의 날씨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주 울산에서는 동백이 활짝 피어 봄인냥 나들이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인제는 고드름이 처마마다 주렁주렁 매달렸다. 범인을 잡을 때 쓰는 “꼼짝마!”라는 표현은 영어로 “Freeze!”다. 우리 말로 다시 풀어보면 “얼어 붙어!”쯤 되겠다. 세상이 마치 얼어붙은 것 같다.
얼어버렸다. 모든 게 다/ 숲도 나무도./ 산새 울음/ 다 그쳐버렸다.// 휘몰아친 북풍 회오리에/ 마구잡이 파헤치는/ 두더지들 등살에/ 숲에 사는 모두의/ 머리가 가슴이/ 다 굳어버렸다. ‘한파’ 전문(오보영)

올해도 동장군(冬將軍)은 기세등등하다. 동장군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는, 전쟁에서 한 번도 진 적 없는 무패의 장군이다. 시베리아 한파를 등에 업은 동장군은 그 내막이 꽤 깊다. 1812년 나폴레옹1세는 45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혹한에 수많은 희생자만 남긴 채 대패하게 된다. 이를 두고 영국 언론은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 덕에 러시아가 승리했다’고 표현했다. ‘제너럴’은 장군, 프로스트는 ‘서리’라는 뜻이다.
‘general frost’라는 단어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배경 삼아 톨스토이가 쓴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또다시 등장하는데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가 이를 ‘후유쇼군(冬將軍)’이라고 번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다시 ‘동장군(冬將軍)’으로 옮겼다. ‘동장군’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10월15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최근 우크라이나에는 동장군이 내려와 병사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한랭전선이 실제로 전장에 혹독한 전선(戰線)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참혹했던 전투는 장진호 전투였다. 1950년 개마고원 장진호(長津湖)에는 영하 30~40℃의 최강 한파가 들이닥쳤다. 10배나 많은 중공군에게 포위된 미 해병 1사단 장병들은 적군보다 추위가 더 무서웠다. 얼어 죽은 동사자와 동상으로 불구가 된 병사가 실제 전투 사상자보다 훨씬 많았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장진호에서 ‘지옥’을 봤다고 했다.
북극발 맹추위에 숲도, 새도, 짐승도 모두 얼어붙었다. 나태주 시인는 ‘동장군은 나이를 먹지 않는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불조심, 건강조심, 사고조심…부디 매사에 건승하시길.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