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길로, 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아느냐?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
하나의 바퀴처럼 다시 떠오르는 ‘붉은 마침표’
옛사람들은 해가 부상(扶桑)에서 떠서 함지(咸池)로 진다고 믿었다. 이 시에서는 동해와 서해 쪽의 해송이 부상과 함지인 셈이다. 해풍은 바다에서 불어오니 동해 쪽 소나무는 서쪽으로, 서해 쪽 소나무는 동쪽으로 굽었다. 보이진 않지만 멀리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자세다. 궁금함에 귀를 열고 몸을 기울이는 자세이기도 하다.

그 우듬지를 이으면 둥근 하늘이 되고 그 하늘길로 해가 뜨고 진다. 동쪽 바닷가에 있는 시인은 그 해를 서쪽에 있는 ‘너’에게 마음을 전하는 편지, 아니 숫제 내 마음의 ‘뜨거운 덩어리’라 하였다. 그래서 수평선을 물들이며 붉게 지는 해는 ‘단 한 줄의 문장’이자 ‘붉은 떨림’, 혈서의 ‘마침표’이다. 이리 애틋한 마음의 점이라니.
세밑에 생각해 본다. 올 한 해, 우리를 떨리게 한 한 줄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어떤 마침표를 찍을까. 하지만 함지의 해는 아침에 다시 부상에 걸릴 것이니, 저 마침표는 마침내 마침표가 아니라 붉은 답신을 품고 다시 새 해, 그러니까 새해(新年)를 밀어 올리는 하나의 바퀴가 될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