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두절미의 자세가 저것일까. 세상사 밑바닥 혼자 견디는 겨울 강을, 꽝꽝 얼어 혹독한 빙판에 이마도장 무릎도장 새겨넣듯 오직 한 가지 자세로 드문드문 놓아준 억새방석마저 밀쳐놓고, 천만 개의 손으로 잔등을 덮어주려 다가서는 함박눈마저 거절하고, 삶의 급물살에서 빠져나와 숨소리도 납작 엎드린 겨울 강을, 어서 몸 일으키라고 잡아끄는 북풍의 가슴깃도 끝끝내 털어내는 저 겨울 강의 시린 어깨를, 본다. 따순 물 한 숟갈 떠 넣어주려 무릎 세우다 어둠 속에 주저앉는 저녁노을의 눈꼬리도 가만가만, 눈물 마를 때까지 본다.
타협없이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겨울 강’
생각해 보면 세상의 낮은 곳을 흐르는 게 강 아닌가. 강은 대지보다도 낮게 흐른다. 겨울 강은 등 위에 얼음을 지고 있으므로 여느 강보다 더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그 엎드림은 나약함이나 겸손이 아니다. 오롯이 혼자 견디는 인고의 자세다. 오히려 겨울 강은 오만하고 결기가 있다. 그것을 시인은 ‘거두절미’라고 표현했다.

거두절미. 머리와 꼬리를 떼어내고 핵심이나 본질만 남은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겨울 강은 기슭의 억새나 함박눈이나 북풍 등에 눈길을 주지 않고, 오로지 ‘흐른다’는 본질에 충실하다. 이합집산과 좌고우면이 발부리에 차이는 돌멩이처럼 흔한 세상에서, 타협이나 굴종을 택하지 않고 ‘세상 밑바닥’을 배밀이로 기어서라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자 하는 겨울 강의 서슬푸름은 사뭇 경건한 느낌까지 준다.
겨울 강의 낮은 엎드림은 저 부동(不凍)의 바다, 꿈이랄지 이상이랄 지가 파도처럼 뛰노는, 가없는 망망(茫茫)의 세계에 닿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견결함에 박수를 보내며 ‘따순 물 한 숟갈’을 대접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