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성목 ‘간 고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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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이성목 ‘간 고등어’
  • 배정환 기자
  • 승인 2024.01.15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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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소장하고 싶다면
이 책은 표지만 읽어야 한다
첫 쪽을 쓰다가 고스란히 백지로 남겨둔
이 육신을 눈으로만 읽어야 한다
이면과 내지가 한 몸통인 그를
몇 장 넘겨보기도 했지만
뒤집을 때마다 생살 타는 냄새가 나는
이 책은 너무 오래 읽어서는 안 된다
그 기록은 물로 쓰고 소금으로 새겨져서
팍팍하고 짤 뿐만 아니라 비릿한
등 푸른 언어와 유선형 문장은 쉽게 타버린다
쉽게 부서지고 쉽게 헤져서
가시와 살점이 지글지글 뿜어내는 푸른 바다와
바다의 내밀한 구전을 다 읽지 못하게 된다
슬쩍 넘기다 우연히 본
그를 읽을 때는 그 백지마저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한장 한장 넘겨 보아야한다
육신을 제본했던 스테이플러 같은 가시가
목구멍에 컥 걸리기도 하는
난해한 이 책은
붉은 혓바닥으로 받들어 읽어야 한다




소금으로 새겨진 내밀한 인생 이야기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고등어는 값싸지만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라 어린 시절 구이와 조림과 찌개로 몸을 바꾸며 밥상에 자주 오르곤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나 사랑을 말할 때 고등어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런 고등어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한 달에 한 번 있는 모임에선 항상 간고등어 구이를 별식으로 주문한다. 몸을 열고 누워있는 간고등어 구이는 아닌 게 아니라 활짝 펼쳐놓은 책 같다. 생선의 등뼈는 책등, 가시와 살은 한줄 한줄 인쇄된 문장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 문장은 ‘소금으로 새겨’졌다. 간고등어의 간은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겪는 삶의 파란이나 풍파일 것이다. 그러한 간이 없다면 고등어는 얼마나 비리고 심심하고 슴슴하랴.

거친 파랑을 헤쳐온 이력이 있어서 고등어는 우리 앞에 저리 당당히 누워있을 수 있다. 우리는 파도의 주름, 그러니까 ‘내밀한’ 인생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 조심조심 살점을 헤집고 젓가락으로 한장 한장 넘겨 본다.

그리 조심히 맛보아도 ‘스테이플러 같은 가시’는 종종 우리의 목에 걸린다. 울컥하는 저 삶의 곡진한 내력.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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