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34)]상고대와 홍매(紅梅)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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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34)]상고대와 홍매(紅梅) 사이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4.01.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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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논설위원

영남알프스에 내린 눈이 만년설처럼 아직도 허옇게 쌓여 있다. 엊그제 통도사에 들렀더니 영각 앞 홍매화가 가지마다 울긋불긋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다. 통도사 뒤 영축산의 겨울과 햇살 고인 절 마당의 봄이 교차하는 지점에 꽃이 피었다. 검은 쇠붙이 같은 나무에 붉은 연지가 선연하다.



얼음 밑에 개울은 흘러도/ 남은 눈 위엔 또 눈이 내린다./ 검은 쇠붙이 연지를 찍는데/ 길 떠난 풀꽃들 코끝도 안 보여/ 살을 찢는 선지 선연한 상처/ 내 영혼 스스로 입을 맞춘다.

‘홍매(紅梅)’ 전문(김상옥)



영남알프스에 허옇게 보이는 흰 빛은 자세하게 보면 반은 눈이고 반은 상고대다. 상고대는 서리가 나무나 풀 따위 물체에 들러붙어 얼어버린 것을 말한다. 수빙(樹氷), 수가(樹稼), 무빙(霧氷)이라고도 한다. 상고대는 순 우리말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상고대’를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라고 풀이해 놓고 있다.

상고대는 하염없이 쌓인 눈과는 그 품격이 다르다. 설화(雪花)는 위로만 쌓이는데 상고대는 바람 방향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을 하고 있다. 청명한 겨울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 영롱한 빛은 수정을 능가한다. 더욱이 상고대가 녹으면서 얼음으로 변하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한편의 음악을 방불케 한다. 우리나라에서 상고대와 눈꽃을 쳐주는 곳으로는 태백산과 덕유산, 소백산, 한라산, 오대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울산에서는 가지산(사진)이 최고의 명품 상고대로 알려져 있다. 신불산도 좋지만 가지산은 단연 으뜸이다.


눈 내리고 내려쌓여 소백산 자락 덮여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홍매화(紅梅花)’ 전문(도종환)



입춘(立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문설주에 바를 입춘축(立春祝)을 쟁여놓았다. 입춘축의 ‘祝(축)’자는 고대 제사에서 간절한 ‘기원’과 ‘축복’의 의미를 담은 상형문자다. 눈 속의 매화를 ‘설중매(雪中梅)’라고 했던가. 상고대와 눈꽃이 활짝 핀 영남알프스 기슭 절 마당에 기원과 축복의 홍매가 피어나고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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