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왔건만 봄 같지가 않구나. 매년 미세먼지와 황사가 눈 앞을 가로막더니 이제는 역병이 휩쓸고 있다.
경칩(驚蟄)이 지난 5일이었으나 인간들은 죽은 듯 기척도 하지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이란 시의 한 구절에서 유래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시절인 ‘서울의 봄’ 당시 김종필이 자주 썼다.
한국의 정치상황을 빗대 ‘봄이 왔으나 아직 봄이 아니다’라고 한 것.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네(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소군원(昭君怨)’ 전문(동방규)

왕소군(王昭君)은 전한(前漢) 황제 원제의 궁녀다. 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힌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러나 흉노와의 화친정책에 의해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왕소군을 그리워하면서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를 지었다. 북방의 오랑캐 땅(胡地)은 꽃도 풀도 없는(無花草) 척박한 오지였으니 소군의 봄날은 얼마나 애통했을까. 계절은 봄이지만 마음은 북풍한설이 휘몰아쳤을 것이다.
春(춘)자는 日(해 일)자와 艸(풀 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고 올라오는 새싹과 초목을 함께 그린 것이다. 바야흐로 들판과 산에는 매화와 산수유, 진달래가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봄이 왔는지 꽃이 피었는지, 봄이 가는지 감각이 없다. 북적거리던 언양장도 문을 닫았고 갓 캐온 냉이, 쑥을 한바구니씩 길거리에 내다팔던 노파들도 발길을 끊었다.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은 먼 나라에서 귀양살이 하는 몸이시다/ 우리가 아는 봄은 봄의 껍데기,/ 봄의 소문일 뿐이다/ 기다려보라고/ 기다리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곧 풀려나 노래하며 춤추며 당도하리라고/ 봄은 끊임없이 소리와 향기와 숨결만을/ 보내온다/ 그러나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은 내년에도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봄이기에 봄은 봄 답다
‘오지 않는 봄’ 전문(나태주)
코로나 역병에, 바이러스보다 더 독한 정치 역병까지 덮치니…올해는 과연 봄이 오기는 올까.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