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0)어흠, 아 그 뉘옵신고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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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0)어흠, 아 그 뉘옵신고 - 작자 미상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3.22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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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흠, 아 그 뉘옵신고 건너 불당에 동령승이 내올시다
홀 거사 홀로 자는 방안에 무엇하러 와 계십니까
홀 거사님의 노감투 벗어 거는 말 곁에, 내 고깔 벗어 걸러 왔습니다

 

당돌한 대화체로 시적 긴장감 선사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계절 깊은 산중에도 꽃이 피는 춘분이다.

봄 답지 않게 강원도에는 때 늦은 봄 폭설이다. 먼 산에 눈이 내려 이곳 남쪽나라 양지바른 산 밑을 내려서면 건듯 부는 바람이 이마에 차다. 그저 하루하루 땅 딛고 하늘 이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때로는 서럽고 아픈 일은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차라리 꿈이기를 바라며 그저 그렇게 산다.

허리 휘고 가슴 답답한 사람이 꼭 찍어 어느 누구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일, 타고 난 운명대로 버티고 사는 것이다. 삐거덕 망가진 돌쩌귀 처럼 육신도 무상하여 봄 눈 녹인 바람에 몸을 떨고 버틴다.

홀거사 홀로 자는 방, 아무도 없어야 할 머리맡에 사람 그림자가 일렁인다. “어흠, 아 그 뉘옵신고?” “건너 불당에 동령승이 내올시다.” 동냥하는 비구니가 홀로 사는 홀 거사(居士)를 찾아 애정행각을 벌이는 문답체의 형식에 얹어 읊은 사설시조이다.

아무리 남녀 내외 없는 현대를 산다고 하지만, 어느 남자의 옷 걸어 놓은 위에 여자의 겉옷일망정 벗어 거는 이들을 회식 자리에서 쉽게 볼 때가 많다. 남과 여 사이에는 예나 이제나 서로가 범접하지 못하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서로가 인연이 닿을, 닿은 관계라면 감투나 고깔을, 겉옷이든 속옷이든 마주 걸든 포개 걸든 무슨 상관이랴.

“홀 거사님의 노감투 벗어 거는 말 곁에, 내 고깔 벗어 걸러 왔습니다.”

비구니의 은근하고도 당돌한 대화체의 이것이 이 작품의 시적 긴장을 끝까지 끌고 있다. 그들이 승려이면서도 여성의 신분인 비구니가 파계라는 성적 비행을 주도한다는 점이 또한 파격성을 더한 시조이다. 그러나 비구니의 은근한 애정행각이 그리 밉지만은 않은 것이 고려 말에서 조선 오백년을 거쳐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 시조를 외며 은근히 웃음을 웃는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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