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1)논밭 갈아 김을 매고-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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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1)논밭 갈아 김을 매고- 작자 미상
  • 차형석 기자
  • 승인 2024.03.29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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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갈아 김을 매고 베잠방이 다임 쳐 신들 메고

낫 갈아 허리에 차고 도끼 버려 둘러메고 무림 산 중 들어가서 삭다리 마른 섶을 뷔거니 버히거니 지게에 짊어 지팡이 받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 도슭 부시고 곰방대 톡톡 털어 입담배 피여 물고 콧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 갈 제 어깨를 추스르며 긴 소리 짧은 소리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함.

“농부, 풍류를 통해 삶의 여유 즐겨”

봄이 오는 새벽의 적막은 못 견딜 만큼 헐겁다. 지난 겨울은 추웠고 비가 많이 내렸다.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기척도 없이 봄은 오고야 만다. 하루 종일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약의 꽃대를 혼자서 들여다보다가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맞닿아 봄비나 봄바람이나 원망하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하루도 빤한 날 없이 각자 서로의 셈법으로 옳으니 그러니 하며 정치꾼은 정치꾼대로 우리는 또 우리끼리 좁쌀 같은 일에 날을 세운다.

위 시조 한 편이 일상에서 우러나온 사설로 하여 이처럼 생동감 있게 평화로운 풍경을 그릴 줄이야.

힘들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소리로 흥을 돋우는 농부의 모습에서 낙천적이고 풍류적인 우리 민족의 성정을 읽는다. 시조의 정형성 속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 그림 한 점이다.

▲ 한분옥 시조시인
▲ 한분옥 시조시인

웃음과 비꼼의 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설시조에 풍류를 실어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했던 것이다.

나무 한 짐 해서 지팡이로 받쳐놓고는 순수한 우리말과 일상적인 어휘로 그 고단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그 시절인들 사람살이 왜 갈등이 없었겠냐만, 노여움도 기꺼움도 가릴 것 없이 무릉도원이 여긴가 싶기만 하다.

누군가 이처럼 신선한 시조를 읊어놓고는 이름도 내 걸지 않고 무심하게 가 버렸는지.

“곰방대 톡톡 털어 입담배 피어 물고 콧노래”나 부르다가 깜박 졸기만 하고 싶은 봄날이다.

한분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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