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2)묏버들 갈해 것거-홍랑(1493~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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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12)묏버들 갈해 것거-홍랑(1493~1583)
  • 전상헌 기자
  • 승인 2024.04.05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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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듸
자시는 窓(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과 함께”

홍랑의 입속은 달고 홍랑의 몸속은 애끓었다. 다급한 사랑의 갈증은 이별 앞에 더욱 목말랐다. 마당귀를 떠돌던 고결한 매화는 지고 둘이서 나눈 사랑의 숨결도 스러지면 봄은 가뭇없이 멀어지리라.

아름다운 봄꽃이 피지만, 어느 꽃이 저 연두 빛만큼 아름다우랴. 애타는 이별 앞에 마음을 빼앗는 것은 오로지 연둣빛 고운 산버들 뿐. 어느덧 봄날은 저만치 가고 있다.

홍랑은 갔지만 그녀가 남긴 절창의 시조 한 편은 우리의 가슴을 영원히 적신다. 사랑에 있어 별리를 노래해야 하고 짧은 봄밤, 채 타오르기도 전에 이별을 예감한다면 차마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사랑의 속성.

누구를 사모하는 것, 사랑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이 없건만 그렇다고 사랑 없이 한 세상 산다면 이 또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차마 이루지 못할 사랑이면 더욱 슬픈 일이 아니랴.

사랑은 어쩌면 생명의 잉태보다 먼저였지 않은가. 사랑이 바로 우주 존재 원리이며 만유의 질서인 것을.

▲ 한본옥 시조시인
▲ 한본옥 시조시인

선조 원년(1568) 당대 최고의 시인 고죽 최경창이 북도평사로 변방인 함경도 경성에 와 있을 때 시기(詩妓) 홍랑과 고죽은 신분 차이를 넘어서 고독과 애정을 서로 시를 나누었다. 그렇지만 고죽은 다음 임지인 한양으로 다시 떠나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홍랑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이별 길, 영흥 까지 배웅하고 함관령에 이르러 숨막히는 별리의 안타까움을 길가의 애먼 산버들 한 가지를 꺽어 절창의 시조 한 편을 읊어 전한다.

“--자시는 窓(창) 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해마다 산버들 물오르는 이 즈음이면 홍랑의 ‘묏버들’과 함께 우리의 가슴에도 새 움이 튼다. 절창의 시조 한 편은 해마다 새롭다.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우리는 시인이 된다.

홍랑 그녀가 떠난 봄날은 간다. 한본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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