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송경동 ‘눈물겨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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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송경동 ‘눈물겨운 봄’
  • 경상일보
  • 승인 2024.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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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참새들의 합창’ 스틸컷.

으쌰 으쌰

한 쪽 다리가 짧은 장애를 가진 넝마주이 사내가
왼발 오른발을 피스톤인 양 힘차게 실룩이며
독산동 고갯길을 올라가고 있다

리어카보다 큰 녹슨 철 대문 한 짝 싣고
구안와사 입도 따라 꽃잎처럼 벙그러져
신났다
기운 내세요! 라는 오래된 갑골문자
거룩한 것들은 왜 모두
아프거나 가난한가


“삶의 파고를 인내하고 마주보려는 자세를…”

이란 감독 마지드 마지디의 <참새들의 합창>이란 영화에는 큰딸의 보청기가 고장 나 고심하는 차에 설상가상으로 직장까지 잃게 된 카림이란 사내가 나온다. 카림은 고물 오토바이로 운전 일을 하면서 온갖 물건을 실어 나르는데 그중 커다란 파란색 철 대문을 싣고 들판을 지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시에도 카림처럼 리어카에 녹슨 철 대문을 싣고 가는 넝마주이가 나온다. 한쪽 다리가 짧아서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면서도 썩 괜찮은 고물을 가져오게 되어 입은 ‘꽃잎처럼’ 벙글거리는. 아, 우리도 빙그레 미소짓게 된다, 눈물짓게 된다. 시인은 묻는다. ‘거룩한 것은 왜 모두/아프거나 가난한가’하고. 그것은 시인이 보잘것없고 남루한 삶에서 거룩한 것을 볼 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카림이 파란 철 대문을 힘겹게 싣고 가는 것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는 책임감과 사랑 때문이다. 넝마주이가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는 것도 같은 연유이리라.

▲ 송은숙 시인
▲ 송은숙 시인

우리는 흔히 뛰어나게 아름답거나 조화로워 보이는 것을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자기 삶에 책임을 지려는 자세, 운명에 굴하지 않고 삶의 파고를 굳건히 인내하며 마주 보려는 이 자세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하다.

그래서 우리도 함께 으샤 으샤.

송은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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