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21일은 태양이 가장 높이 뜬다는 하지(夏至)였다. 사람들은 여름날 중천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워낙 뜨거우니 하지가 여름 한가운데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지는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 6월 하순에 위치해 있다. 이날은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상승해 몹시 더워진다. 하지의 낮 시간은 무려 14시간 35분이나 된다.
하지는 장마를 이끌고 온다. 올해 울산은 지난 22일 첫 장맛비를 필두로 한달 동안 시시때때로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장마는 흔히들 비가 오래도록 내리는 성가신 귀신 같다고 해서 ‘長摩(장마)’고 부르지만 사실은 순우리말이다. 한자로는 매실이 익어갈 즈음 내린다고 해서 매우(梅雨), 오랫동안 내린다고 구우(久雨), 더운 여름날에 내린다고 서우(暑雨), 오랫동안 쌓이면서 내린다고 적우(積雨)라고도 한다. 장마가 시작되면 모든 작물이 쑥쑥 큰다. 오죽하면 ‘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말이 생겼을까.

비가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감자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감자가 들어온 지 200주년 되는 해이다. 조선 후기 서적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감자는 청나라로부터 들어왔다. 농촌진흥청은 감자 전래 200주년을 맞아 지난 20일 강릉에서 6월21일을 ‘감자의 날’로 알리는 선포식을 열기도 했다. 6월21일은 절기상 하지와 겹치는 날이어서 그렇게 정해졌다. 실제 하지 전후로 캐는 감자를 ‘하지감자’라 부르고, 일부 지방에서는 하짓날 조상이나 사직에 감자를 올리는 ‘감자 천신(薦新)’ 풍속이 남아 있기도 하다.
감자를 삶는다. 흐린 불빛 아래 감자를 먹는다. 비가 내리고 누군가의 심장 같은 감자가 따뜻하다. 일손을 놓고 휴식처럼 감자를 먹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젓가락으로 포크로 감자의 심장을 푹푹 찌르는 저녁이다. 어릴 적 친구 미자 같은 만만한 감자, 나는 자주 감자를 먹는다. 그때마다 비가 내렸다…(후략). ‘감자’ 일부(손음)
감자는 식량작물로는 유일하게 알칼리성이다. 비타민C와 철분, 칼륨 등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특히 비타민C 함량은 사과보다 3배 이상 많다. 감자 두 개만 먹으면 하루 비타민C 권장량을 충족시킨다. 비 내리는 날 뽀얀 감자가 기다려진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