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와 함께 걷다-라는 단편을 썼는데 광주사태를 소재로 쓴 것이었다. 말미에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호주사막으로 가기 위해 시드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퍼스로 간다는 것으로 끝을 맺었었다. “K시인은 혼자서 호주로 갔나요?”
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그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니오. 혼자 사막에서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부인하고 함께 갔지요.”
부인이라는 말에 긴장이 풀어지며 한숨이 크게 나왔다. 그때부터 사막에 가고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서 굼틀거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김은경 시인의 명함을 받아 챙겼다.
전망대에서 시낭송을 끝내고 대곡박물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내 차에 관장만 태우고 곧장 천전리 암각화로 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걸어서 천전리 암각화를 지나 반구대 암각화까지 걸어서 갔다. 대곡박물관 주차장에서 천전리 각석까지는 1㎞가 채 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도 차를 타고 먼저 도착한 나는 천전리 각석 앞에 있는 문화해설사를 찾아 안내를 부탁했다. 월요일이라 관람객이 뜸한 터라 우리의 방문을 매우 반가워했다.
천전리 각석 문양은 관람자가 바라보기에 아주 좋은 거리와 각도에 위치해 있었다. 눈에 익은 문양 앞에 서자 K가 떠올랐다. 입모양이 약간 비뚤어지며 웃는 모습이 방금 전에 본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둥근 원 안에 세로로 굵직하게 새겨진 문양이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의 성기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더러 수긍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리 원시시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부끄럽게 남녀의 성기를 함부로 새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남자의 성기 문양이 없는 걸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문화해설사에게 문제의 문양을 가리키며 의미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 모른다- 였다. 아래 부분에 있는 한문은 신라시대에 새겨진 것이라 내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만 고대 그림내용은 아무도 해석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아무도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반발심이 일어났다. 도대체 원시시대 사람이 새겨놓은 내용을 이정도로 과학이 발달한 시대의 사람들이 해석을 못하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시인들이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새겨 넣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어릴 적에 흙바닥에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던 생각을 해보았다. 흔히 그릴 수 있는 문양이 소유를 나타내는 둥근 원이라고 생각하면 겹으로 그린 원은 여러 겹의 방어막을 그린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의 독립된 부족을 뜻하는 것일 수 있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림문자를 풀어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각화 바로 앞에 그림을 알아보기 쉽게 그려 넣은 안내판을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