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내 삶의 화사한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에리코만 곁에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는데, 삶의 질까지 점점 향상되고 나니 금상첨화였다.
자동차를 처음으로 구입해 온 가족이 교외로 나들이도 다녔다. 조선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사람들이 부러워했었는데 자가용을 타고 다니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물론 가족 중에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침 마다 유리를 학교에 태워다 주는 일도 내 몫이었다. 유리도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나를 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유리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나올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에리코가 보는 앞에서 부를 때는 더더욱 행복했다.
유리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가족이 모여 있는 그림을 그리면 항상 내가 빠지지 않았다. 저의 친아버지 마츠오가 서 있을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 그림이지만 기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 단 한 가지가 에리코의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태산을 움직이기보다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태산 같은 에리코의 마음과는 다르게 찰나의 순간에 마음이 변해버린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스스로도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돌아앉은 나의 마음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로지 에리코 뿐이었다.
일본으로 건너온 지 10년이 다 되어 갔다. 길다면 긴 세월이었는데 에리코와는 손을 잡은 적도 없었다. 함부로 나의 마음을 받아달라고 애걸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좀 더 가족처럼 밀착할 기회는 다가왔다. 에리코의 아버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 사회는 갑자기 활기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에리코의 아버지는 자꾸만 커져가는 도시에서 집 짓는 사업을 시작했다. 거기에 나의 협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동안 집수리를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는 집짓기 기술보다는 더 필요한 것이 있었다. 집 짓는 사업이 커지자 사업체를 꾸려가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조선에서 면서기로 근무했던 나의 이력이 빛을 발할 기회가 온 것이었다.
에리코의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사업에 꼭 필요해서 그러니 조선인 남자를 가족으로 등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바꾸어 먹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조건 하에 에리코의 승낙이 떨어졌다. 이제는 에리코와 합법적인 부부였다. 아무것도 아닌 서류상의 변화였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의미로 다가왔다. 서류상으로 혼인신고를 마치고 조촐한 가족파티를 했다. 에리코의 아버지는 형식적으로나마 내가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축하했다. 나는 세상을 모두 얻은 듯 기뻤다. 그러나 에리코의 표정은 땅 속에 깊게 뿌리박은 바위덩이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삶은 충분히 행복했다. 서류상의 부부가 되었으니 누가 보아도 완벽한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