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사태로 행사장은 썰렁했다. 일정한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넓은 호텔 연회장은 텅 빈듯했다. 좌석은 300석인데 참여 인원은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아는 얼굴이 있나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행사는 9시에 시작되어 오후 여섯 시까지 진행되었다.
학술대회 발표자는 10명이었다. 처음 강연자는 암각화 발견자인 문명대 교수였다. 20대 후반에 암각화를 발견했는데, 50주년 학술대회이니 80세가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문 교수의 얼굴에는 나이든 티가 역력했다. 나는 20년 전부터 문명대라는 이름을 들어왔어도 실제로 대면하기는 처음이었다.
문 교수의 발표 제목은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과 암각화의 의미와 해석학이었다. 처음 암각화를 발견하게 된 동기와 발굴조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시대별 암각화의 분류에 대해 설명했다. 암각화 무늬를 종류별로 구분하기는 했는데 해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하우 울산대학교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존 연구소장의 발표가 있었다. 제목은 동물표현으로 보는 천전리 각석의 시간이었다.
다음으로 울산대 전호태 교수의 천전리 각석의 가치와 의의가 발표되었다. 암각화의 가치를 역사적 가치와 문화예술적 가치, 종교신앙적 가치로 분류해 발표했다. 전호태 교수의 발표가 끝난 다음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점심은 주최 측에서 도시락으로 준비했다.

점심이 끝나고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어 앞줄에 앉아 있는 문명대 교수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었다. 존함을 익히 들어왔는데 처음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다. 소설가라는 걸 밝히고 명함을 내밀었다. 딱히 설명하기가 애매해 20년 전에 반구대 암각화 입구에 있는 공룡발자국을 발견한 사람이라고 했더니 조금은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그러나 80 노구의 교수와 더 이상 진전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리로 돌아와 바로 앞줄에 앉아 있는 이하우 울산대 교수에게 말을 붙였다. 소설가라는 신분을 밝히고 용건을 이야기했다.
나는 이 교수에게 암각화 속의 옛글자를 해석해 내지 못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 교수는 암각화 문양은 무수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학자들이 해독해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안에서 나온 상형문자는 세 가지 언어로 쓰여 있어 그중의 하나인 그리스어를 해독할 수 있었던 덕에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초기한문의 상형문자와도 아주 다른 글자입니다. 정확하게는 글자인지 그림인지도 판별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는 소설가의 입장에서 암각화 속의 추상그림들을 해독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교수는 나의 얼굴을 잠시 빤히 건너다보았다. 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