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또끼[46]]6부. 암각화 (3)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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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또끼[46]]6부. 암각화 (3) - 글 : 김태환
  • 이형중
  • 승인 2024.07.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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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주석과 아연의 혼합물을 만드는 기술이 없어 생활용구로 만들어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청동기가 아니면 무엇으로 암각화를 새겼을까요?”

“당연히 돌이죠.”

“그럼 암각화 벽면보다 강한 돌을 사용했겠군요.”

“그렇죠.”

나는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이 교수에게 내밀었다. 김용삼에게 20만 원을 주고 구입한 깨진 홍옥석이었다.

“이 돌이라면 암각화를 새기는데 충분한 강도가 나오겠지요?”

이 교수는 내가 건네준 홍옥석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찰했다. 손톱으로 긁어보기도 하고 바닥에 두드려보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어디서 나온 돌이냐고 물었다. 나는 대곡천 바닥에서 발견한 돌이라고 했다.

“내가 실험해 보았는데 대곡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돌도끼보다는 강도가 강한 것 같습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돌도끼도 대부분 대곡천과 태화강에서 발견되는 연옥석의 재질이죠.”

“이 돌은 자연석인데 마제석기로 가공된 돌이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발견되지 않았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알기로는 이 홍옥석은 남한 전역에서 제일 강도가 강한 암석 같습니다. 암각화를 새기던 사람들이 강도가 아주 강한 돌을 지나쳤을 리가 없지 않을까요?”

나는 일부러 홍옥석으로 만든 돌도끼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유물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분석도 필요할 것 같았다. 돌에 암각화를 새기던 돌로 만든 정과 같은 석제 연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곡댐에 담수를 시작하기 전에 문화재발굴을 몇 년에 걸쳐 실시했지만 홍옥석으로 만든 석제 도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홍옥석 원석을 갈아 강도가 비슷한 바위 면에 그림을 새겨보는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이 교수는 홍옥석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가져간 홍옥석 원석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돌려준다는 조건을 달아 흔쾌히 빌려주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학술대회지만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대회가 모두 끝난 뒤 문명대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이 교수에게는 다음에 시간을 내어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학술대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짧은 초겨울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아내는 건성으로 하루 종일 어디에 갔다 왔느냐고 물었다. 동구현대호텔에 다녀왔다고 하니 누구 결혼식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나마 어떤 여자와 갔다 왔느냐고 다그치지 않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아뿔싸. 나는 또 한 가지 아내에게 책잡힐 일이 생겼구나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자기 생각한다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떠오를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서부터 아이들의 생일까지 기념일은 시시때때로 다가와 나를 괴롭혔다. 나는 가족들의 생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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