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61]]8부. 사막(2)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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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61]]8부. 사막(2) - 글 : 김태환
  • 이형중
  • 승인 2024.08.0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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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경주로 올라갈 테니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김은경 시인은 경주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울산시립도서관에 볼 일이 있어 가야 하니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시간은 한 시간 후로 정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차로 10분 거리이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무엇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허둥거렸다. 당연히 욕실에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머리까지 감아야 하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치약을 듬뿍 짜서 양치를 하다가 갑자기 요의를 느껴 변기에 앉았다. 변기에 앉아 칫솔을 물고 있자니 거품이 잔뜩 일어난 치약이 턱까지 흘러 내렸다.

‘사막이라니? 사막이라니?’

흘러내리는 치약을 한 손으로 훔치면서도 중얼거렸다. 20년 전이었다. 처음 반구대 암각화를 찾아갈 무렵은 심한 갈수기였다. 봄철이었는데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간다고 난리를 쳤다. 사연댐의 수위도 바닥을 치고 있었다. 덕분에 반구대 암각화로 건너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차로 집청정까지 간 우리는 바짝 말라 있는 대곡천을 걸었다. 하상은 상류에서 떠내려 온 보드라운 흙모래가 가라앉아 사막을 연출해 놓고 있었다. 우리는 발자국을 남기며 암각화를 향해 걸었다. 마치 오아시스를 찾아가는 대상의 행렬처럼 보였다.

반구대 기행을 마치고 시 작품을 제출했는데 내 시에만 사막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아도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사막을 느낀 것은 나 한 사람뿐인 것 같았다. K는 내 시를 극찬을 했고 다음 해에 저자의 이름을 자신으로 바꿔 잡지에 실었다.

그가 호주의 사막으로 간 것이 나와 아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사막이라니?’

나는 도서관 건물에 들어서면서도 입 안에 사막을 굴렸다. 김은경 시인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서관 메인 홀의 한쪽 벽면에 울산작가의 책을 장식해 놓은 곳이 있었다. 진짜 책이 아니라 커다랗게 장식용으로 만든 것이었다. 김은경 시인은 내 첫 번째 장편소설인 별의 전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기 이렇게 올라와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저는 처음보고 깜작 놀랐어요. 진짜 책인 줄 알고요.”

인사대신 책 이야기부터 건네었다. 사실은 나도 처음에 커다란 책을 보고 놀랐었다. 어떻게 이런 커다란 책을 만들었나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가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내 책이 시립도서관의 메인 벽에 걸려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잠시 후에 옆 자리에 같이 걸려 있는 책들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울산 지역 작가라면 오영수 같은 작고한 유명작가의 책을 우선으로 선택했어야 했다. 옆에 나란히 올라 있는 책들 중엔 금년에 처음 낸 수필집도 있었다. 선정기준이 작년에 출간한 책 중에서 고른 것이었다.

“제 시집이 이런데 걸려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양보할 게요. 이걸 떼어내고 대신 이 자리에 올려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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