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양하겠습니다. 제가 경주 작가거든요.”
김은경 시인과 나는 2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올라갔다. 나는 챙겨 온 별의 전쟁을 건네주었다. 김은경 시인도 자신의 시집 한 권을 건네준 다음 미래시학이라는 시 전문 잡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책의 겉모양으로 보아 여러 번 보았던 흔적이 보였다.
“여기에 K시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김은경 시인은 능숙하게 책 중간부분을 펼쳤다. K가 나온 부분은 페이지 끝을 조금 접어놓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김은경 시인이 펼친 페이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시를 다루는 잡지의 중간에 여성잡지에서나 있음직한 여인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사진은 태양을 바라보고 서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었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화가가 그린 그림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역광으로 사진을 찍어 입고 있는 옷의 색깔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가 중년여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진 맨 위에는 흰 글씨로 -시인을 기다리며-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비록 태양을 바라보며 찍은 뒷모습이지만 20년 동안이나 내 시신경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여인이었다. 책속의 사진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정면의 얼굴모습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20년이라는 세월이 상처를 내고 지나간 얼굴을 단번에 마주한다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도 파리한 얼굴색에 깊은 볼우물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분이 K시인의 부인이세요. 지금 호주서부의 퍼스라는 곳에 계신답니다.”
“그렇군요.”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K가 호주에 가 있다는 이야기는 대곡댐 문학탐방 때 들었었다.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면 그나마 흐릿한 그림자 같은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것 같았다.
“부인께서 카톡으로 잡지사에 보내 온 글을 실었답니다. K시인이 호주에 가서도 미래시학에 작품을 발표했었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뜸하더니 부인께서 잡지사로 소식을 전해왔답니다.”

“그가 죽었나요?”
나는 말을 꺼내놓고도 스스로 놀랐다. 사람의 목숨에 대해 물으면서 그렇게 감정이 없는 투로 물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목소리 자체가 물기라고는 없는 메마른 모래사막을 건너온 바람 같았다.
“뒷장부터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확하게는 실종 상태인 것 같아요.”
김은경 시인은 어서 책장을 넘겨보라고 다그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책장을 넘길 생각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해를 안고 서 있는 그녀의 뒷모습 사진을 들여다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사진 속의 그녀가 홱 돌아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