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오랫동안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자 김은경 시인이 조급증이 이는가 보았다. 책을 선물로 줄 테니 가져가서 천천히 읽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달에 만나기로 했던 대암댐 탐방 일정에 대해 물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서 서서히 책장을 넘겼다.
그이가 떠나간 지 벌써 150일이다. 나는 오늘도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그를 맞을 준비를 한다. 그는 반드시 해가 뜨는 아침에 집으로 찾아올 것이라. 왜냐하면 뜨거운 낮을 피해 밤새 걸어온다면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분명 면도를 하지 않아서 수염이 사막의 마른 검불처럼 무성할 것이다. 물과 식량이 부족할 테니 양 볼의 살이 빠져 홀쭉해졌을 것이고 광대뼈는 더 도드라져 보일 것이다. 매일 집을 생각하며 걸었을 테니까 눈은 더 움푹 들어갔을 것이고 눈빛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어쩌면 입고 있는 옷조차도 땀에 절고 가시에 찢겨져 누더기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속을 누비던 시 조차 색이 바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35년 동고동락의 추억도 그의 기억 속에 변질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다.
사막을 지나온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에 그가 씩씩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을 잡을 것이다. 그러면 그 동안에 조바심치던 마음이 한낱 기우였다는 걸 깨우치며 가벼운 인사와 함께 티끌처럼 날려버릴 것이다. 그의 여윈 손을 잡고 방금 차려놓은 아침식탁으로 그를 끌고 갈 것이다.
나는 한 페이지를 읽고 나서 거꾸로 책장을 넘겼다. 다시 아침 해가 그녀의 옷자락을 헤치고 솟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사막의 아침 바람에 그녀의 치마 말기가 흔들리는 듯했다. 나는 당장에 사막으로 달려가 해를 등에 업고 그녀가 기다리는 아침 마당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마 몇 해 전부터 내 안에서 사막이 부르는 소리가 분명 있었다. 그걸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몇 년 전에 발표한 단편 -사막을 걷다- 라는 작품에도 마지막에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시드니에서 퍼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끝을 맺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작품 속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사막이 나를 잡아당기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단편 -사막을 걷다- 는 모 문학상 후보작에도 올라 매우 고무되어 있었다. 언젠가 뒷이야기를 이어 장편으로 써낼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생한 현장체험을 위해 호주의 사막을 여행할 계획이었다. 사막은 내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인의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자 김은경 시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인의 촉으로 무엇인가 감추어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도 몰랐다.
“저는 강의 때문에 들어가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