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69]]8부. 사막(14)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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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69]]8부. 사막(14)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4.08.2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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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지로 해결 할 수 없는 마음의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새삼 김재성 노인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김인후에게는 작은할아버지의 입장을 잘 좀 헤아려 보라고 말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순사를 살해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여자가 탐이나 일본남자를 살해한 것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작은 할아버지가 살해를 했다고 증명이 된 것도 아니잖아요?”

“돌도끼가 있잖아요. 그것이 살해도구라고 안 했던가요?”

지금까지 읽어본 내용대로라면 돌도끼로 살해한 것은 분명했다. 에리코라는 일본여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걸로 나와 있었다.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면 아무리 일본인 순사라고 하더라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기는 힘들 것 같았다. 더구나 살인사건을 떠나 유부녀인 일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가족을 버렸다는 사실은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김인후는 아직까지 작은 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어려서는 잘 몰랐어요. 작은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서 귀국을 하지 못했다고 들었거든요. 어린 마음에 왜 못 돌아오실까?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일까? 궁금해 했죠. 일이 잘 풀려서 돈을 잔뜩 벌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돈을 많이 가지고 오시지는 않았나요? 일본에서 건축회사를 운영해 성공하셨다고 적혀 있던데.”

김인후는 대답대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돈을 가져오기는 했어도 그렇게 놀랄 만큼 많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김인후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명예회복에 뜻이 있는 게 분명했다.

“우리 아들이 육사를 나와 장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집안에 독립투사 한 명쯤 있다면 자긍심을 세울 수 있겠죠. 물론 출세에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고요.”

나는 김인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 같은 게 엿보였다. 그 때 고속열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나는 터널 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사리진 고속열차처럼 내 마음을 어디 깊은 터널 속에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루 종일 사막을 방랑하는 떠돌이처럼 들떠 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내가 당장 호주의 사막으로 달려간다면 남아있는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내는 그렇다고 쳐도 이제 초년병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들과 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가 나처럼 마음을 먹었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 작은 할아버지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백세노인의 상태가 좋아 봤자죠.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죠.”

“가끔 면회는 갑니까?”

“작년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다녔는데 올해는 코로나 방역으로 직접 면회가 안 됩니다. 두꺼운 유리 너머로 비대면 면회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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