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76]]10부. 운명(1) - 글 : 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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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붉은 도끼[76]]10부. 운명(1) - 글 : 김태환
  • 경상일보
  • 승인 2024.09.02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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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그 이야기 때문에 내 인생의 방향이 틀어지게 된 것이었다.

나는 김용삼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김일환을 생각하면 삶이 너무 왜소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 값으로 준 이백 오십만 원은 별도로 이백만 원을 더 꺼내 건네주었다. 김용삼은 돈다발을 손에 들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할아버지를 잘 아시는 분이시군요. 그렇죠?”

“할아버지께서 술을 드신 이유가 뭔지 알고 계시나요?”

“네. 우리 아버지께서 월남전에서 돌아가셨거든요.”

“아. 그랬군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우리 할아버지를 알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세요.”

“….”

나는 함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나면 다시 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슈퍼를 나왔다. 김용삼은 돈다발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내가 탄 택시가 가물가물 사라져갈 때까지 가게 앞에 장승처럼 서 있었다.

김인후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온 뒤 서재에 틀어박혔다. 김재성 노인의 일본어판 일기를 읽는데 온 힘을 집중했다. 번역기를 사용해 가며 읽느라 상당한 인내력이 필요했다. 이틀 밤낮을 읽고 나니 어지간히 끝을 낼 수 있었다. 기록은 분명 빠진 부분이 있었다. 김인후가 보훈처에 제출했다 되찾아 왔다고 했는데 분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야물게 하려면 원본은 놓아두고 복사본을 만들어 보냈어야 했다.

김인후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마침 자기가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혼자서 보훈처에 갔는데 빠진 서류를 찾아왔다고 했다. 보훈처 직원이 일부분이 필요해서 늦게 돌려 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유촌 마을로 차를 몰았다. 한 시라도 빨리 가려고 울산 언양간 고속도로를 탔다. 서울산 톨게이트에서 내려 경주 방향 국도를 달렸다. 잠시 후에 반곡초등학교 앞을 지나갔다. 맞은편에 김용삼의 제일슈퍼가 눈에 들어왔다. 김용삼이 아직까지 이십년 전에 홍옥석으로 만든 돌도끼를 노인에게 판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도 덤으로 이백만 원이나 더 주었다고 하니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들러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김재성 노인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김인후는 마당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커피포트에서 붉그스름한 차를 따라 주는데 맛이 독특했다. 산에 흔히 있는 감태나무를 잘라다 차를 만들었는데 무릎이 시리거나 어깨가 결리는데 특효가 있다고 했다. 나는 약효에 대해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글을 쓰느라 무릎이 시큰 거린지 오래 되었으므로 단숨에 들이켰다.

“보훈처 직원들이 이 안에서 뭔가 발견한 모양입니다. 자기들이 복사를 해서 가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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