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는 투가 우리 작은 할아버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다나 봐요.”
“그렇다고 하던가요?”
“꼭 집어 말하지는 않았는데 말투가 그런 것 같더라구요.”
“지금 이 부분에 일본인 순사를 죽인 내용이 들어 있을 것 같아요. 딱 그 부분만 빠져 있거든요.”
나는 감태나무 차를 세 잔이나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이 급했다. 김인후도 결과가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지금 김재성 노인을 면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도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김재성 노인을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노인을 보면 나의 미래의 모습이 보일 것 같았다. 사랑의 격랑에 휩쓸려 살아온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도 있었다. 그가 말은 하지 못해도 알아듣기는 한다니까 물어보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백세 노인을 직접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김인후는 오늘 당장 면회 신청을 해놓겠다고 했다.
“빠르면 일주일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더라고요. 연락이 오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서재로 향했다. 아내는 내가 어디 한군데 몰두하면 주변 사정은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부러 말도 시키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내가 김인후에게 받아온 서류를 펼치기도 전에 커피를 타서 서재로 들어왔다.
“아무리 바빠도 눈은 마주치고 삽시다.”
나는 아내가 타 온 커피를 보자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감태차를 세 잔씩이나 마신 탓이었다. 아내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바로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내는 그때까지 서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못마땅한 것이 있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톤 굵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당신 도대체 뭐예요? 식구가 많기나 하면 몰라. 단둘이 살면서 이게 뭐예요.”
“아니 갑자기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라고요? 그리고 뭘 잘못한지도 모르겠다고요?”
아내의 음성이 한 톤 높아졌다. 나는 아직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밖에서 자고 올 거면 전화라도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떤 여자한테 빠져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최소한의 기본은 지켜줘야죠.”
“여자라구? 난 그런 적 없는데. 그저께 저녁엔 두서면에 있는 유촌 마을의 김인후라는 남자 집에서 자고 왔소. 남자들 둘이서.”
나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풀죽은 목소리로 변명을 했다. 아내는 무엇이 서러운지 눈물을 훔쳐냈다. 결론은 자고 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전화 한 통 해줄 마음까지 없었느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