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여 작품…대왕고래 사진 기억에 남아
지난 5일 찾은 울산 남구 신정동의 한 건물 3층 서진길 울산예총 고문의 작업실과 같은 울산사진문화연구실. 60여년의 사진작가 인생을 말해주듯 이곳에는 ‘반구대 암각화’ ‘풍어제’ ‘처마밑’ ‘가을 지붕’ ‘바위틈’ ‘폐선’ 등 분류별로 정리된 사진집들이 진열장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또 한 켠에는 오래된 수동 필름 카메라와 필름, 흑백·컬러 사진 확대기(수동 사진 인화장비)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옛날 사진 관련 장비들도 눈에 띄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사진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 곳은 서진길 고문의 작업실이자 60여년 사진 인생의 박물관 같은 곳이다. 서 고문은 요즘 6번째 사진집 출간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능(陵)에게 길을 묻다’라는 경주 왕릉을 기록한 사진집이다. 13년간 경주 왕릉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로,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막바지 편집 작업 중이다.
서 고문은 “경주 왕릉 사진집을 준비하면서 울산을 더 자세히 알게 됐다”며 “예를 들어 헌강왕은 처용과 망해사, 효공왕은 계변천신 설화, 눌지왕은 박제상과 치술령 망부석 설화, 경순왕과 문수동자 설화 및 삼호 지명 등 경주와 울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90%가량 완성됐으며, 일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들을 다시 가서 촬영해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사진집은 울산의 격변기 기록과 정체성을 살린 ‘우리 사는 땅’(1988년)을 시작으로 경주 남산의 역사문화 유적을 새로운 영상미학으로 재탄생 시킨 ‘숨결’(2006년), ‘사진으로 보는 울산 100년’(2009년), ‘반구대 암각화, 대곡천 삶의 흔적’(2020년), ‘울산 근대화의 젖줄, 태화강’(2022년) 등 주제를 정해 이어져 오고 있다.
◇경주 왕릉 이어 울산 차(茶)문화 기록 준비
서진길 고문이 사진작가의 걷게 된 것은 사진관을 운영하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중학교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며 인연을 맺게 됐다.
서 고문은 “1950년대에 울산 중구 성남동에서 외삼촌이 사진관을 운영하셨는데 아마 울산에서 가장 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중학교때부터 사진을 접했고, 고등학교 2학년때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를 들고 데뷔 작품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1959년에 울산 동헌 앞에서 열린 시민들의 집회 현장에서 처음으로 촬영한 사진이 그의 첫 작품인 ‘민심’이었고, 이를 통해 본격적인 사진작가(한국사진작가협회 정식 입회는 1973년)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서 고문의 작업실에는 흑백사진의 이 작품이 액자에 담겨 보관돼 있다.
그는 군대에서도 사진병으로 특기를 이어갔고, 1965년에 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울산시청 별정직 공무원으로 특채돼 1981년까지 16년간 울산시정과 격변기 울산의 역사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그가 남긴 작품 수만 2000여점에 이른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1974년에 장생포에서 촬영한 대왕고래 사진이다.
서 고문은 “당시 길이 23m에 무게만 65t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고래였다.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구경했을 정도였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고령에도 그의 창작활동 열의는 여전하다. 경주 왕릉 사진집에 이어 울산 차(茶) 문화를 기록하는 사진집도 준비하고 있다.
서진길 고문은 “울산은 ‘다전차밭’이 있었는 등 옛부터 차(茶) 문화, 찻사발, 옹기 등 관련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며 “사진작가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인데 20년 동안 기록 연구한 울산의 차 문화 작품집을 꼭 출간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서진길 고문은 대한민국 사진대전 초대작가상을 비롯해 한국사진문화상,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문화예술인에게 큰 영예인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울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울산문화원장 등을 역임했다.
차형석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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