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만 졸인 포도잼을 김치 통에 넣어 준 엄마. 팔순의 엄마가 처음 만든 포도잼에는 뭉개지지 않은 껍질이 많았다. 숟가락으로 골라내다가 긴 젓가락으로 집어내다가, 창가의 조각구름이 다 지나갈까 봐 커다란 냄비에 쏟아 붓고는 핸드 믹서기를 들고 주저 없이 갈았다. 이 뜨거움이 아니라면 어떻게 고집스런 열매를 녹여낼까. 이 불길이 아니라면 어떻게 다른 모습으로 만들까. 가스 불 앞에 서서 눅진해지는 포도잼을 저었다. 참 이상하게도 종종 연민은 또 다른 형태의 감옥 같다는 생각이 길어지지 못하게 포도잼은 자꾸 눌어붙었다.
살면서 위로가 가장 간절했던 엄마가 밝은 슬픔의 색깔까지만 졸여놓은 포도잼. 그 잼을 어둠의 빛깔로 졸여 작은 유리병에 나누어 담았다.
이게 사랑의 이야기로 들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엄마표 포도잼 졸이며 엄마 생각

음식은 엄마와 딸을 이어주는 가장 원초적인 무엇 아닐까. 그들은 함께 시장을 보고 푸성귀를 다듬어 김치를 만들거나 국의 간을 맞추며 교감을 나눈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요리법을 은밀히 전수하며 결속을 다지기도 한다. 그래서 친정에 다녀오는 딸은 김치와 젓갈, 양념에 재운 고기로 두 팔이 무겁다. 하지만 가장 가깝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자주 부딪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시인의 엄마도 딸을 위해 포도잼을 만들었다. 더 늙기 전에 딸에게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만 앞섰나, 포도잼은 절반만 졸았다. 시인은 반만 완성된 포도잼을 믹서기로 갈고 다시 불길에 졸이면서 엄마에 대해 생각한다. 불길에 녹아 변해가는 포도처럼 엄마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불길이 포도즙을 감싸듯 엄마도 어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흔히 엄마가 딸을 낳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연민’이라고 한다. 딸도 여성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드는 마음. 역시 딸이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될 때도 연민을 느낀다. 엄마와 딸은 늙어버린 샴쌍둥이 같다. 포도잼이 졸아들수록 더 짙어지고 달콤해지듯, 이젠 서로를 껴안게 되는.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