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지난 16일 제주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대표와 만나 한·미간 조선산업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USTR 대표와 공식 회담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번 만남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USTR 대표단 측 요청으로 성사됐다.
이날 회담에서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HD현대중공업과 미국 방산 조선사 헌팅턴 잉걸스사와의 협력 사례를 소개했다. 공동 기술개발, 선박 건조 협력, 기술 인력 양성 등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고 양국 간 조선산업 협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미국 내 중국산 항만 크레인의 독점적 공급 문제와 관련해 HD현대의 계열사인 HD현대삼호의 크레인 제조 역량을 소개하고, 공급망 확대를 위한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제안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항만에서 쓰이는 크레인의 약 80%는 세계 최대 규모 업체인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진화중공업(ZPMC) 제품이다. ZPMC의 미국 내 점유율은 2023년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72.8%보다 더 높다.
미국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중국산 크레인이 첨단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로 교체를 추진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들어서는 중국산 크레인 교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중국산 부품을 활용한 크레인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사실상 퇴출하겠다는 의도를 밝혔다. 이후 USTR은 지난달 17일 중국산 크레인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업계에서는 한미 조선 협력이 강화되면 항만 크레인도 협력 아이템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HD현대삼호는 크레인 설계부터 제작, 시운전까지 전 공정을 자체 수행할 수 있고, 연간 대형 크레인 10기를 제작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췄다. 향후 생산 설비 증설도 검토하며 재작년 기준 3.6%인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에 이번 정 수석부회장과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와의 만남으로 향후 진행될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한국 조선업이 합의를 이끌 키로 부상할 것이라는 데 힘이 실릴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HD현대는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의지와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이를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춘 만큼 필요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혜기자 sjh3783@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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