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진 바다, 흔들리는 어장]어장 옮기고 대체 어자원 발굴…고수온 돌파구 찾기 안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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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바다, 흔들리는 어장]어장 옮기고 대체 어자원 발굴…고수온 돌파구 찾기 안간힘
  • 오상민 기자
  • 승인 2025.07.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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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을 낀 작업자들이 분류대 위로 쏟아진 멍게를 부지런히 골라내고 있지만 건져 올린 멍게는 예년보다 작고 수량도 턱없이 부족하다.

고수온은 더 이상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로 인한 어업인들의 피해 규모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까지 달하고 있다. 어업인에겐 생존권이, 시민들에겐 밥상을 위협하는 ‘재해’로 떠올랐다.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거제·통영 일원에서 진행된 ‘기후위기와 해양 수산 현장 탐방 전문연수’를 통해 고수온 피해의 현실에 대해 짚어본다.



◇멍게 양식장, 바닷속 숨통 막혀

지난 3일 거제시 둔덕면 멍게 작업장. 고무장갑을 낀 작업자들이 분류대 위로 쏟아진 멍게를 부지런히 골라냈다. 하지만 건져 올린 멍게는 예년보다 작고 수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작업장 한켠에서 들린 어민의 한숨은 길었다.

멍게수하식수협에 따르면, 지난해 고수온으로 경남 지역 멍게 양식장은 사실상 초토화됐다. 통영 200어가 85억4155만원, 거제 74어가 24억7000만원, 남해 8어가 3억160만원, 고성 5어가 2억6700만원의 피해(경남도 추산)가 집계됐다. 하지만 어민들은 “정부 집계는 절반도 못 미친다”며 “체감 피해는 600억원 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식장에 남은 멍게는 2년산이 아니라 1년산 고속성장 개체뿐이다. 원래 멍게는 2년을 키워야 적정 크기와 품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다. 어민들의 분류대 위 손놀림은 쉴 틈 없었지만 “그만큼 건질 게 없다는 이야기”라는 목소리도 뒤따랐다.

▲ 고수온에 강하고 질병 저항력도 뛰어나며 양식장 관리에 유리한 쥐치가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쥐치 양식장.
▲ 고수온에 강하고 질병 저항력도 뛰어나며 양식장 관리에 유리한 쥐치가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쥐치 양식장.

일반적으로 멍게는 10~18℃에서 가장 잘 자라는 저수온성 생물이다. 하지만 수온이 20℃를 넘으면 먹이 섭취와 대사량이 급격히 줄고, 26℃ 이상에서는 폐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지난해 한국 연안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연평균 수온을 기록했다.

거제·통영 해역 수심은 10~20m로 얕다. 비교적 수온이 차가운 심해로 더 깊이 내리려고 해도, 수심이 깊어질수록 빈산소수괴(산소부족 물덩어리) 발생 위험이 높아 멍게가 폐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김태형 멍게수하식수협 조합장은 “최악의 경우 동해안으로 어장을 옮기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수송비며 해류 조건이며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수온에 견딜 수 있는 개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굴도, 쥐치도 새 길 찾아

굴 양식도 고수온 등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경남 해역에서 굴 8156줄이 고수온 피해로 죽었고, 피해액은 67억원에 달했다. 굴은 보통 26~27℃까지는 견딘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난해처럼 극단적인 고수온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때문에 거제 해역에서는 개체굴 양식이 새 돌파구로 떠올랐다. 기존의 수하식 양식은 굴을 바닷속 깊이 매달아 키우지만, 개체굴은 해수면에 가까운 표층에서 바스켓에 담아 키운다. 표층은 산소 공급이 원활하고, 수온이 높아질 때는 바스켓을 위·아래로 이동시켜 수온 관리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개체굴은 모양이 일정하고 품질이 균일해 수출 시장에서 알굴보다 2배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초기 시설 투자비가 7억~8억원으로 적지 않다.

엄성 라온팜 대표는 “수하식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개체굴이야말로 고수온 시대에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초기 투자비 부담이 크지만, 품질도 좋고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아 반드시 해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쥐치도 기후위기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과거 ‘쥐포’로 널리 알려진 쥐치는 1990년대 이후 자원량이 크게 줄어 고급 어종이 됐다. 그러나 고수온으로 매년 대량 폐사가 반복되는 조피볼락 대신, 쥐치는 양식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쥐치는 고수온에도 강하고, 질병 저항력도 뛰어나며, 양식장 관리에도 유리하다. 그물에 붙은 이물질을 뜯어 먹어 수질 개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박정근 거제 쥐치 해상 가두리 양식장 대표는 “쥐치는 고수온에서도 잘 버티기 때문에 앞으로 수산업의 주요 어자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왼쪽부터 주성조 거제시 수산과 팀장과 변광용 거제시장이 고수온에 따른 양식장 피해와 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 왼쪽부터 주성조 거제시 수산과 팀장과 변광용 거제시장이 고수온에 따른 양식장 피해와 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바다숲, 마지막 희망

울산은 아직 정식으로 집계된 고수온 피해는 없지만, 전복 종자 등의 사례로 고수온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바닷속 생태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수온 상승은 바닷물의 층을 더 뚜렷하게 만들어 산소 공급과 영양염 순환을 방해한다. 그 결과, 플랑크톤이 줄고 해양생물들의 먹이망도 무너지고 있다.

이로 인해 경남뿐 아니라 전국 해역에서 해조류 군락의 소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해조류 군락은 어류들의 산란장과 은신처이자 바닷속 먹이사슬의 시작점이었지만, 고수온이 장기화되면서 해조류들이 녹아내리고, 성게 같은 초식동물의 이상 증식으로 바닷속은 점점 황폐해졌다. 갯녹음(바다사막화) 현상이다.

이에 울산을 비롯한 연안 도시들은 바다숲을 해답으로 삼고 있다. 동구 주전·일산, 북구 판지·당사동·우가, 울주군 서생 등 울산 앞바다 곳곳에 이미 수십억원을 들여 바다숲이 조성됐다. 울산 앞바다는 암반이 넓고 수심이 깊으며 수온이 상대적으로 낮아 해조류 군락 조성에 최적지로 꼽힌다.

▲ 고수온 피해 돌파구로 개체굴 양식이 떠오르고 있다. 해수면에 가까운 표층에서 바스켓에 담아 키우다 보니 산소 공급이 원활하고, 수온이 높을 땐 바스켓을 수직으로 이동시켜 수온 관리가 용이하다.
▲ 고수온 피해 돌파구로 개체굴 양식이 떠오르고 있다. 해수면에 가까운 표층에서 바스켓에 담아 키우다 보니 산소 공급이 원활하고, 수온이 높을 땐 바스켓을 수직으로 이동시켜 수온 관리가 용이하다.

바다숲은 단순히 해조류만 심는 것이 아니다. 연안 수역에 해조류나 인공 구조물을 설치해 수산생물들의 서식 공간을 늘리고, 동시에 바닷속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기후변화 완화에 기여하는 블루카본(Blue Carbon) 사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바다숲은 산소를 공급하고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높여 수산자원의 회복 기반이 된다.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해양수산부, 한국수산자원공단과 ‘해조류 블루카본 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울산 바다숲 조성에 총 40억원의 민관 공동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수산자원공단 관계자는 “동해 바다는 조류가 빠르고 수온이 낮아 바다숲 조성에 적합하다”며 “울산은 앞으로도 바다숲을 확대해 연안 생태계를 복원하고 지역 어업인의 소득 증대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통영시=오상민기자 sm5@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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