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군들과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가야산으로 달아난 김수의 목을 치기는커녕 오히려 조정에서 그를 중용한다는 사실이 홍의장군을 화나게 했다. 사심 없이 충성을 바치는 충신들에 대한 선조의 의심과 질투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정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들어가서 세상을 등지고 여생을 보내고 싶지만, 남명 선생님 문하에서 유학을 배운 이 땅의 선비로서 후손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은 지켜야 하겠기에 차마 떠나자 못하고 그가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 그의 생각이 더 천동의 목을 베지 못하게 만들었다. 장군의 옆에 있던 부장이 소리쳤다.
“장군! 제가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저놈의 말은 역당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지금 조정에 붙은 간신배들이 장군을 모함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걸 모르십니까? 주상전하께서 장군을 오해하시고 장군을 모른다고 했다지 않습니까?”
그랬다. 선조는 의병장들을 매우 의심하여 그들이 큰 공을 세워도 외면했으며, 심지어 조선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는 홍의장군 곽재우까지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대신들에게 말했다.
“나서지 말거라. 내 일이다. 전란이 끝나면 공이 크고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들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부장이 말을 이었다.
“조정에서 큰 상을 내릴 것입니다.”
장군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끝내 장군은 자신이 하려던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천동을 향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디로 갈 것이냐? 올해부터 각 지역마다 속오군이 편성되었다. 생각이 바뀌면 거기라도 들어가 보거라.”
천동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면천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홍의장군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가 보고 싶습니다. 지리산과 가야산 자락을 다녀올까 합니다. 장군의 뜻을 받들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네 마음의 번뇌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너 또한 이 땅의 백성임을 잊지 말거라. 서애대감에 의해서 면천법이 시행되었으니 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공을 세워서 면천도 하고 관직도 제수 받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장군.”
홍의장군은 병졸을 시켜서 술을 가져오게 했다. 이별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술 한잔하고 가거라. 이별주나 들자구나.”
연거푸 석 잔의 술을 따라주고는 장군은 천동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이 너와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후로는 내 눈에 띄지 말거라. 그때는 너를 엄히 다스릴 것이다.”
“장군님! 감사합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오.”
천동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군께 큰절을 올리고는 이내 종종걸음으로 석문산성을 벗어났다.
글 : 지선환
 
			
